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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47만 원, 신호 위반 범칙금 35만 원"… 베트남, '무법천지 도로' 오명 벗을까

입력
2025.01.10 04:4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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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교통 법규 강화 나선 베트남

7일 베트남 하노이의 도로에 차와 오토바이가 멈춰 서 있다. 그간 전방 차량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뀌어도 이를 무시하고 달리는 차량이 많았지만, 이달 1일 교통 단속이 강화되고 범칙금 액수도 크게 뛰면서 과거보다 개선됐다. 하노이=허경주 특파원

7일 베트남 하노이의 도로에 차와 오토바이가 멈춰 서 있다. 그간 전방 차량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뀌어도 이를 무시하고 달리는 차량이 많았지만, 이달 1일 교통 단속이 강화되고 범칙금 액수도 크게 뛰면서 과거보다 개선됐다. 하노이=허경주 특파원

#. 7일 오후 베트남 하노이 중심가의 왕복 8차선 도로. 전방 차량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뀌자 수십 대의 오토바이와 차량이 정지선을 칼같이 지키며 멈춰 섰다. 신호가 바뀌든 말든 무시하고 질주하는 위반 차량도, 좌측에서 달려오는 차는 아랑곳하지 않고 악착같이 머리부터 들이밀던 교차로 꼬리 물기 행태도 볼 수 없었다. ‘눈치 없이’ 차 사이를 비집고 슬금슬금 전진하던 오토바이 한 대만 공안에게 걸렸을 뿐이다. 한 교민은 “하노이에 12년간 거주하면서 이렇게 질서정연한 도로 풍경은 처음 본다”며 놀라워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상황에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건 그만큼 오랫동안 베트남 도로가 ‘무법천지’였다는 방증이다. 수도 하노이와 남부 최대 도시 호찌민 등 대도시에 잠시만 있어도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은 이랬다. 차선 구분 없이 도로를 꽉 채운 것도 모자라 인도까지 밀고 들어오는 오토바이 부대, 4차로에서 시도하는 좌회전과 유턴, 정지 신호에도 쌩쌩 달리는 차량과 횡단보도 없는 넓은 도로를 거침없이 건너는 무단횡단자들, 그리고 역주행하는 수십 대의 오토바이. 운전자들 간 나름의 규칙이 있고 ‘무질서 속 조화’가 있다고 해도, 외국인에게는 상당히 낯선 풍경이다.

지난해 6월 베트남 하노이 시내 도로에 퇴근길 시민들이 탄 승용차와 오토바이가 뒤엉켜 있다. 교통 체증으로 차로가 꽉 막히면 오토바이 운전자들은 인도를 침범해 달리곤 한다. 하노이=허경주 특파원

지난해 6월 베트남 하노이 시내 도로에 퇴근길 시민들이 탄 승용차와 오토바이가 뒤엉켜 있다. 교통 체증으로 차로가 꽉 막히면 오토바이 운전자들은 인도를 침범해 달리곤 한다. 하노이=허경주 특파원

이 때문에 서구권 여행 사이트에서는 베트남에서 도로를 건널 때 “망설이지 말고, 일단 가라(just go, don't hesitate)”는 ‘꿀팁’까지 언급된다. 신호가 없는 횡단보도도 많고, 신호가 있어도 이를 어기는 오토바이가 많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주저하다가는 한나절이 지나도록 작은 길 하나조차 건너지 못할 수 있다는, 농반진반 얘기인 셈이다.

‘베트남 도로=혼란과 무질서’라는 오명이 덧씌워지자 결국 베트남 정부가 칼을 빼 들었다. 새해부터 교통 법규 위반 처벌 수위를 대폭 높이고, 범칙금도 최대 수십 배 늘리기로 한 것이다.

7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관광객들이 횡단보도를 건너는 동안 차량과 오토바이가 정지선 뒤에 멈춰 서 있다. 그간 보행자 신호에도 사람들을 피해 질주했던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하노이=허경주 특파원

7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관광객들이 횡단보도를 건너는 동안 차량과 오토바이가 정지선 뒤에 멈춰 서 있다. 그간 보행자 신호에도 사람들을 피해 질주했던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하노이=허경주 특파원

이를 뒷받침하려는 듯 현지 언론도 지난 1일부터 일주일 이상 공안의 대대적인 단속 상황과 계도 기사를 쏟아냈다. ‘교통질서 지키기’가 새해 베트남의 최대 이슈로 떠오른 분위기다.

외국인들도 단속에서 자유롭지 않다. 베트남에서 오토바이를 빌린 뒤 직접 운전하며 여행하다가, 또는 도보 관광을 하다 무심코 교통신호를 어기거나 무단횡단을 할 경우엔 제재 대상이 된다. 베트남은 겨울철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여행지인 만큼 주의가 요구된다.

”사상자 수 줄이려 교통 법규 강화”

베트남 정부의 대응 기조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가혹한 범칙금 부과’다. 이달 1일부터 자동차 운전자의 신호 위반이나 도로 역주행, 진입금지 도로 주행 등에 대한 범칙금은 종전 400만~600만 동(약 23만~35만 원)에서 1,800만~2,000만 동(약 104만~116만 원)으로, 다시 말해 3~5배가량 치솟았다.

7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법규 위반 차량을 단속하는 공안 앞으로 오토바이를 탄 시민들이 지나고 있다. 하노이=허경주 특파원

7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법규 위반 차량을 단속하는 공안 앞으로 오토바이를 탄 시민들이 지나고 있다. 하노이=허경주 특파원

또 난폭 운전 및 과속에 대한 과태료도 최대 5,000만 동(약 290만 원)으로 종전(최대 1,200만 동)의 4배 이상 불어났다. 운전 중 휴대폰이나 전자기기를 사용하다 적발되면 지난해의 두 배인 400만~600만 동(약 23만~35만 원)을 내야 한다. 차량 문을 열 때 주의하지 않아 사고를 낸 경우의 범칙금은 무려 50배 가까이 늘었다. 기존에는 40만~60만 동(약 2만3,000~3만5,000원)이었지만, 이달부터는 2,000만~2,200만 동(약 116만~128만 원)으로 오른 것이다.

베트남 국민의 ‘발’이자 인구수(약 1억 명)만큼 많은 오토바이도 타깃이 됐다. 오토바이 신호 위반 범칙금은 400만~600만 동(약 23만~35만 원)으로, 기존(80만~100만 동)보다 5배 이상 치솟았다. 오토바이를 몰다가 휴대폰 등 전자기기나 우산을 사용할 경우, 또는 우산을 쓴 사람을 태울 경우에는 10만~20만 동(약 5,800~1만1,600원)의 범칙금을 내게 됐다. 아울러 △헬멧 미착용 또는 느슨한 착용 △과속 △역주행 △인구 밀집 지역 등에서 지속적으로 경적을 울리는 행위도 범칙금 부과 대상이 됐다.

7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교통 법규를 위반한 한 오토바이 운전자가 공안에게 붙잡혀 있다. 하노이=허경주 특파원

7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교통 법규를 위반한 한 오토바이 운전자가 공안에게 붙잡혀 있다. 하노이=허경주 특파원

횡단보도 보행자 신호를 지키지 않거나, 규정상 보도가 아닌 곳을 건너는 행위, 도로 중앙분리대를 넘어가는 행위 등을 하다 적발되면 최대 25만 동(약 1만5,000원)을 물게 된다. 기존 무단횡단 범칙금은 최대 10만 동(약 8,600원)이었고 이마저도 유명무실했는데, 금액을 2.5배 올리고 단속도 강화하기로 했다. 과태료 연체 시 하루에 0.05%의 이자도 꼬박꼬박 더해진다.

베트남 통계청이 발표한 작년 4분기 베트남 노동자 평균 월 소득은 820만 동(약 47만 원)이었다. 경우에 따라선 한 달 치 수입에 가까운 금액이 교통 법규 위반의 대가로 사라질 수 있게 됐다는 얘기다.

현지 당국이 교통질서와 관련해 바짝 고삐를 조이고 나선 것은 그만큼 사고가 잦기 때문이다. 지난해 베트남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는 총 2만1,532건으로, 이로 인해 1만6,044명이 다치고 9,954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중 차선 무시 사고의 사상자는 4,200명을 웃돌았다.

7일 베트남 하노이의 한 도로에 승용차와 트럭, 오토바이가 정지선을 지키며 멈춰 서 있다. 그간 전방 차량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뀌어도 이를 무시하고 달리거나 꼬리 물기를 하는 차량이 많았던 점을 감안하면 굉장히 이례적이다. 이달 1일 교통 단속이 강화되고 범칙금 액수도 크게 뛰면서 생긴 현상이다. 하노이=허경주 특파원

7일 베트남 하노이의 한 도로에 승용차와 트럭, 오토바이가 정지선을 지키며 멈춰 서 있다. 그간 전방 차량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뀌어도 이를 무시하고 달리거나 꼬리 물기를 하는 차량이 많았던 점을 감안하면 굉장히 이례적이다. 이달 1일 교통 단속이 강화되고 범칙금 액수도 크게 뛰면서 생긴 현상이다. 하노이=허경주 특파원

역주행과 신호 위반의 사상자 수도 각각 179명과 423명으로 집계됐다. 베트남 공안부 교통경찰국은 “근래 교통 안전이 개선됐으나, 기존의 처벌 수준이 낮았다”며 “법규 위반을 억제하고 교통사고·사상자 수를 줄이기 위해 처벌 강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신고 포상금 지급에 ‘카파라치’ 등장

일단 초반 효과는 ‘기대 이상’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범칙금·과태료 인상 첫날부터 도로 상황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현지 일간 뚜오이쩨는 4일 “막대한 범칙금·과태료 도입으로 대부분의 운전자와 승객이 교통 규칙을 더 엄격히 준수하게 됐다. 이제 그들은 빨간불에서는 멈추고 노란불에서는 더 이상 속도를 내지 않으며, 차도를 따라 달린다”고 평가했다. 이어 “베트남은 이제 더 문명화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길을 걷고 있다”고 덧붙였다.

7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교통 법규를 위반한 한 운전자가 공안에게 붙잡혀 범칙금 부과 통보를 받고 있다. 하노이=허경주 특파원

7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교통 법규를 위반한 한 운전자가 공안에게 붙잡혀 범칙금 부과 통보를 받고 있다. 하노이=허경주 특파원

물론 공안에게 붙잡혀 껑충 뛰어 버린 범칙금 딱지를 받아 든 시민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지난 1일 하노이에서 정지 신호를 위반하고 직진하다가 적발돼 범칙금 400만 동이 부과된 60대 오토바이 배송 기사 L씨는 공안과 VN익스프레스에 “종일 일한 뒤 집에 돌아가 바로 잠들었기 때문에 뉴스를 볼 시간조차 없었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또 “이른 아침부터 나와 주문 6건을 처리했지만, 유류비를 제외하고 벌어들인 돈은 6만3,000동(약 3,600원)뿐”이라며 “범칙금이 이렇게 과중하면 더 이상 배송 일을 하지 못할 것 같다”고 토로했다.

6일 오토바이를 타고 인도 위를 달리다 적발된 T씨도 600만 동(약 34만 원)의 범칙금을 부과받은 뒤 눈물을 흘렸다. 그는 “어린 두 자녀를 키우느라 (빠르게 이동해야 해) 오토바이로 인도에 올라간 것”이라며 “깜짝 놀랐다. 벌금액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과하다. 이제 절대 위반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탄했다.

베트남 교통 법규 위반 제보 애플리케이션 'VNe트래픽' 첫 화면. 교통 법규 위반 신고자에게 과태료의 10% 이내, 최고 500만 동 한도의 포상금을 지급한다. 하노이=허경주 특파원

베트남 교통 법규 위반 제보 애플리케이션 'VNe트래픽' 첫 화면. 교통 법규 위반 신고자에게 과태료의 10% 이내, 최고 500만 동 한도의 포상금을 지급한다. 하노이=허경주 특파원

현지 교통 당국에 따르면 시행 첫날(1일) 하루에만 전국에서 1만3,591건의 교통 법규 위반 행위가 적발됐다. 범칙금·과태료 처분 총액은 280억 동(약 16억 원)에 달했다. 호찌민시는 나흘(1~4일)간 6,106명이 제재를 받았고, 약 100억 동(약 5억7,000만 원)의 범칙금·과태료가 부과됐다.

베트남 정부는 교통 법규 위반 신고자에게 포상금까지 지급하기로 했다. 신고 내용과 절차가 적절하다면 범칙금 액수의 10% 내에서 건당 최고 500만 동(약 29만 원)을 지급한다.

이를 위해 규제 시행일에 맞춰 신고용 애플리케이션까지 출시했다. 법규 위반 차량의 사진 또는 동영상을 첨부해 올리면 된다. 이에 생업을 등지고 도로 한쪽에 숨어서 또는 대놓고 타인의 차량 주행을 촬영하는 ‘카파라치(자동차+파파라치)’로 활동하는 이들도 등장했다.

타인의 교통 법규 위반을 신고해 포상금을 받으려는 베트남 시민들. 일부는 도로 한편에서 대놓고 촬영을 하고(위 사진), 어떤 이들은 박스 등으로 위장해 몰래 촬영까지 한다(아래 사진). 베트남 뚜오이쩨·하노이 라디오텔레비전(HRT) 영상 캡처

타인의 교통 법규 위반을 신고해 포상금을 받으려는 베트남 시민들. 일부는 도로 한편에서 대놓고 촬영을 하고(위 사진), 어떤 이들은 박스 등으로 위장해 몰래 촬영까지 한다(아래 사진). 베트남 뚜오이쩨·하노이 라디오텔레비전(HRT) 영상 캡처

한때 현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한 청년이 교통 위반을 신고해 하루 만에 5,000만 동(약 290만 원)을 모았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그러나 베트남 공안부는 ‘가짜 뉴스’라고 선을 그었다. 앱 계정을 만들 때 공민증(주민등록증)이 필요해 외국인은 참여할 수 없다.

다만 공익 목적이 아닌 개인의 수익 창출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독립 언론인 응우옌깍토안은 자유아시아방송(RFA)에 “과도한 포상금 제도는 오히려 사람들이 서로를 비난하고 감시하게 만드는 역효과를 부를 수 있다”며 “교통 문화 개선이라는 긍정적 취지는 사라지고 ‘돈 버는 직업’이라는 인식만 남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하노이=글·사진 허경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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