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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이시바 시게루(왼쪽) 일본 총리가 7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 이후 공동 기자회견 중에 선물 받은 사진집을 보여주고 있다. 워싱턴=AP 뉴시스
아부의 사전적 의미는 '남의 비위를 맞추어 알랑거림'이다. 한자로 풀면 '언덕 아(阿)'에 '붙을 부(附)'로, 권력자나 강자에 빌붙어 출세하거나 이익을 얻으려는 행동을 뜻한다. 우리에겐 부정적 의미가 강하지만, 조직이나 인간관계에선 나쁘게만 볼 건 아니다. 미국 주간 '타임'의 전 편집장인 리처드 스텐겔은 저서 '아부의 기술'에서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고 관계를 개선하려는 전략적 행위라고 정의했다.
□ 지난 7일(현지시간) 열린 미·일 정상회담과 관련해 미국 언론은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의 환심을 사기 위해 ‘아부의 기술(the art of flattery)’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이시바는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대미투자 규모(1조 달러) 확대, 미국산 LNG 수입 확대, 2027년까지 일본의 방위비 2배 증액 계획을 밝혔다. 반면 ‘미국의 추가 관세 부과 시 보복 관세로 대응할 것이냐’고 물은 언론엔 “가정의 질문엔 답하지 않겠다”고 해 트럼프로부터 “매우 좋은 답변”이란 칭찬을 받았다.
□ 미국에 역내 안보를 기대고 있는 한국과 일본은 관계 강화를 위한 외교 수단으로 아부를 활용해 왔다. 트럼프는 2018년 북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노벨평화상에 대한 애착을 보였다. 당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미국 정부의 비공식 요청을 받아 트럼프를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했다.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북미회담을 중재했던 문재인 대통령도 트럼프를 향해 “노벨평화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덕담했다. 그러나 양국에선 이에 대한 비판 여론이 컸다.
□ 트럼프 2기 외교는 미국 우선주의를 넘어 영토 확장까지 꾀하는 제국주의 형태를 띠고 있다. 덴마크령 그린란드를 매입해 미국 영토로 삼고 1999년 파나마에 넘긴 파나마운하 운영권을 되찾겠다고 한다. 최근엔 가자지구를 장악해 휴양지로 개발하겠다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 해결 방안으로 공인돼 온 ‘두 국가 해법’마저 무시했다. 국제 규범을 노골적으로 흔드는 트럼프를 향한 아부가 민망하지 않으려면 보다 정교한 기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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