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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 지붕에 온돌 깐 95세 적산가옥... 현대식 카페로 재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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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 지붕에 온돌 깐 95세 적산가옥... 현대식 카페로 재탄생

입력
2025.03.18 04:3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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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나이층' 출간한 정이삭 건축가 인터뷰
청파동 적산가옥 역사와 리모델링 과정 담아
서양식 외관에 내부엔 한일 건축 양식 적용

1930년에 지어진 서울 용산구 청파동의 적산가옥. 정이삭 동양대 교수가 리모델링한 뒤 모습이다. 개인 주택으로 사용하다 리모델링 후 카페로 바뀌었다. 노경 작가 제공

1930년에 지어진 서울 용산구 청파동의 적산가옥. 정이삭 동양대 교수가 리모델링한 뒤 모습이다. 개인 주택으로 사용하다 리모델링 후 카페로 바뀌었다. 노경 작가 제공

'이 집은 일본의 것인가, 한국의 것인가, 서구 문명의 편린인가.'

정이삭(44) 건축가(동양대 교수)가 1930년에 지어진 서울 용산구 청파동 주택을 고치면서 마주한 질문이다. 이 주택은 일제강점기 일본 건설회사 임원이 살던 적산가옥. 하지만 전통적인 적산가옥은 아니었다. 90도의 경사지붕을 얹은 트러스(삼각형 뼈대) 구조 등 외관은 서구의 양식을 본떴다. 당대 일본인이 선망했던 서양식 주택의 응접실과 선룸(온실)이 있었다. 바닥에는 한국식 온돌을 깔았다.

정 건축가가 "일본인이 양복을 입고, 한식을 먹는 모습"이라며 이 집을 '한반도 화양절충(和洋折衷)식 주택'이라 명명한 이유다. 집(현 카페 '킷테')의 역사와 리모델링 과정을 기록한 '나이층'을 최근 펴낸 정 건축가를 지난 14일 만나 집의 의미를 짚었다.

서울 용산구 청파동에 자리한 적산가옥의 리모델링되기 전 모습. 리모델링 전과 후에 형상적으로 큰 차이는 없지만, 오래된 집이니만큼 모든 나무를 새로 다시 만들어 끼우느라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시공에만 2년이 걸렸다. 노경 작가 제공

서울 용산구 청파동에 자리한 적산가옥의 리모델링되기 전 모습. 리모델링 전과 후에 형상적으로 큰 차이는 없지만, 오래된 집이니만큼 모든 나무를 새로 다시 만들어 끼우느라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시공에만 2년이 걸렸다. 노경 작가 제공


서울 용산구 청파동에 위치한 1930년생 적산가옥의 모습. 동네 사람들은 이 집을 '노란집'으로 부른다. 노경 작가 제공

서울 용산구 청파동에 위치한 1930년생 적산가옥의 모습. 동네 사람들은 이 집을 '노란집'으로 부른다. 노경 작가 제공

1층 바닥 파내자 15개 재료층 드러나

사람으로 치면 아흔이 넘었다. 이런 문화재급 적산가옥의 리모델링은 관이 주도해 원형으로 복원하거나 민간에서 집의 뼈대만 남겨둔 채 현대적 쓰임에 맞게 싹 바꾸는 극단적 양상을 보인다. 하지만 이 집의 리모델링은 이런 관행 중 어느 것도 택하지 않았다. 정 건축가는 "건물 원형을 복원하는 것은 그동안 건축물이 사회와 교감하며 적응해 온 생명력을 잃는 것이기에 집이 가진 혼종성과 변용적 양태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계획했다"며 "나이테가 흔적을 남기듯이 이 집도 살아온 흔적이 다 드러나게끔 고치려고 했다"고 말했다. 집 리모델링을 의뢰한 건축주도 아버지와 유년 시절에 대한 기억이 있는 집의 과도한 변형을 원하지 않았다. 이 집은 해방 후 미군정 때 민간인에게 불하(拂下)했고, 현 건축주의 선친이 새 주인이 됐다.

1930년 지어진 서울 용산구 청파동 주택 1층 바닥 공사 때 드러난 이 집의 '나이층'. 노경 작가 제공

1930년 지어진 서울 용산구 청파동 주택 1층 바닥 공사 때 드러난 이 집의 '나이층'. 노경 작가 제공

여러 양식이 뒤섞인 집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은 바닥이다. 1층 바닥을 파내자 구들 난방 위에 기름보일러를 위한 동파이프 난방 배관이 얹어져 있었다. 마치 나이테처럼 15개의 재료층이 드러났다. 이 단면은 공사를 마친 뒤 집 내부의 '도코노마(일본 가옥에서 꽃이나 그림 등을 놓고 신성하게 여기는 공간)'에 전시돼 있다.

1930년 지어진 서울 용산구 청파동 주택을 리모델링하며 절단된 바닥의 단면이 현 카페로 쓰이는 건물 내부에 전시돼 있다. '킷테' 인스타그램

1930년 지어진 서울 용산구 청파동 주택을 리모델링하며 절단된 바닥의 단면이 현 카페로 쓰이는 건물 내부에 전시돼 있다. '킷테' 인스타그램


천정 되살리고, 선룸도 그대로... 시공만 2년

서울 용산구 청파동 적산가옥의 리모델링 후 모습. 특히 천정 마감이 연구 가치가 있을 정도로 보존이 잘 돼 있다. 노경 작가 제공

서울 용산구 청파동 적산가옥의 리모델링 후 모습. 특히 천정 마감이 연구 가치가 있을 정도로 보존이 잘 돼 있다. 노경 작가 제공

오래된 집을 보수하면서 동시에 옛 흔적을 남긴다는 건 까다로운 작업이다. 신축이 리모델링보다 쉽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무엇을 살리고, 엎을지, 단계마다 고민의 연속이었다. 정 건축가는 "건축주들이 이 집에 살았던 방식이나 추억을 환기할 수 있도록 문짝이나 문틀 같은 단초를 섬세하게 남겨 놓고자 했다"고 말했다.

목조주택은 리모델링 시 보통 천정을 터서 트러스를 노출시키는 방식으로 공간감을 살리지만 이 집은 그러지 않았다. 일본식 천정 마감이 연구적 가치가 있을 정도로 보존이 잘 돼 있었기 때문이다. 선룸도 이전 거주자들의 흔적을 남겨 놓으려고 통창 대신 기존 기둥이나 창의 형태를 유지한 채 보수했다. 천정부터 기둥, 바닥까지 나무를 다시 하나하나 새로 만들어 끼웠다. 외관상 리모델링 전후가 큰 차이가 없지만 완공까지 시공에만 2년이 걸렸다.

이 집의 전면부에 위치한 썬룸 역시 일본식 가옥의 특징이 아닌 서구식 주택 양식을 본뜬 것이다. 노경 작가 제공

이 집의 전면부에 위치한 썬룸 역시 일본식 가옥의 특징이 아닌 서구식 주택 양식을 본뜬 것이다. 노경 작가 제공


1930년 지어진 서울 용산구 청파동 주택은 리모델링 후 카페로 사용된다. 킷테 인스타그램

1930년 지어진 서울 용산구 청파동 주택은 리모델링 후 카페로 사용된다. 킷테 인스타그램


한옥만이 한국 건축은 아니다

1930년에 지어진 서울 용산구 청파동 주택의 응접실. 노경 작가 제공

1930년에 지어진 서울 용산구 청파동 주택의 응접실. 노경 작가 제공

회색의 원룸 건물 사이에 노랗게 들어선 집은 "서구화를 곧 근대화"로 여겨온 한국 건축의 근대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한국 건축이라고 하면 한옥을 떠올리거든요. 그럼 한국에는 전통만 있고 한국만의 건축적 모더니티는 없는 거죠. 그런데 이 집을 지을 때 일본인이 지휘를 했더라도, 당대의 한국 스타일이 녹아 있거든요. 못을 박는 방식이나 집의 기단부에서요. 우리도 자체적으로 진화한 한국만의 건축적 모더니티가 분명히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정이삭 동양대 교수가 14일 서울 용산구 청파동 주택(현 카페 '킷테')에서 리모델링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강예진 기자

정이삭 동양대 교수가 14일 서울 용산구 청파동 주택(현 카페 '킷테')에서 리모델링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강예진 기자

질문에 대한 답은 여전히 찾아가는 중이다. 출간도 그 과정의 일환이다. 집의 역사적, 건축사적 가치를 알아본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재정 지원을 해서 출판이 가능했다. "이 집은 90여 년간 한반도 지역에 적응하며 변화해 온 과정의 흔적이 그 어떤 문화재보다 잘 남아있어요. 수많은 시행착오와 비효율을 겪었지만, 이러한 경험의 기록과 공유가 더 나은 다음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송옥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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