錢爭외교(6) 환율 대전
美 재정ㆍ무역수지 적자 임계치
쌍둥이적자 해소 위한 관세카드
미국 내 인플레이션 자극할 우려
트럼프, 관세에 안보 패키지 엮어
인위적 통화가치 조정 최종 목표
100년 무이자 채권은 적자 돌파구
달러 패권 두고 中과 충돌 불가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5월 뉴욕 브롱크스에서 대선 유세를 하던 중 청중에게 ‘마가’ 모자를 던지고 있다. 뉴욕=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시적 경기침체를 의도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최근 제기됐다. 국채 금리를 낮춰 재정 부담을 덜려 한다는 해석이 붙는다. ‘관세전쟁’ 등이 초래할 수 있는 경기침체에 대해 “그럴 가치가 있다”고 한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의 발언이 기름을 끼얹었다. 트럼프가 ‘전환기’라는 표현으로 러트닉을 옹호하자 시장은 ‘트럼프세션(Trumpcession·트럼프발 경기침체)’ 가능성에 한 차례 폭락했다.
‘MAGA’의 핵심은 쌍둥이 적자 축소
트럼프가 내세운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의 핵심은 쌍둥이(재정·무역수지) 적자를 줄이고 달러 패권을 유지하는 가운데 제조업 강국의 위상을 되찾는 것이다. 미국 경제의 체질을 바꾸겠다는 의미인데, 이는 당장의 주식시장 조정이나 경기 둔화를 어느 정도는 감내해야 가능하다. 트럼프가 경기침체를 의도적으로 부추긴다는 의구심이 나오는 이유다.

사실 미국의 재정 및 무역수지 적자는 임계치에 다다랐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지난해 1월 34조 달러를 넘어선 국가부채는 6개월 후 35조 달러를 돌파하더니 4개월 만인 같은 해 11월 36조 달러 선마저 뚫었다. 우리 돈으로 무려 5경2,635조 원을 훌쩍 넘는다. 2024 회계연도에는 순이자 지출이 8,820억 달러로 국방예산(8,740억 달러)을 사상 처음으로 앞질렀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제시한 적정한 재정 적자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3% 수준이다. 하지만 지난해 미국은 역대 세 번째로 많은 1조8,330억 달러의 재정 적자를 기록했고, 이는 GDP의 6.4%에 달한다. 같은 해 무역수지 적자는 역대 두 번째인 9,184억 달러였는데, 상품 교역 기준으로는 1조2,000억 달러로 역대 최대였다. 달러 강세로 상품 수입이 크게 늘어난 결과다.
트럼프가 쌍둥이 적자를 줄이겠다며 동원한 최우선 수단은 관세다. 하지만 관세 카드는 미국 내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수 있고, 무역 상대국들의 달러 활용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 임기가 4년뿐인 트럼프로선 내년 11월 중간선거 전에 인플레이션을 잡는 게 최우선 과제다. 또 기본적으로 달러 패권을 유지하려면 무역수지 적자는 불가피하다.
‘관세-안보’ 연계는 환율전쟁 대비책
트럼프는 이 같은 곤란과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관세에다 안보를 엮을 심산이다. 집권 1기 때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특히 최종 목표는 인위적인 통화가치 조정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시장에선 벌써부터 ‘마러라고 합의’가 거론된다. 6년 만에 관세전쟁을 재연한 트럼프의 목적지는 결국 ‘환율전쟁’인 셈이다.
미국은 인위적으로 통화가치를 조정한 전례가 있다. 1985년 플라자 합의다. 당시 미국은 경상수지 적자 규모가 GDP의 3%를 넘어가자 1, 2위 무역적자국인 일본과 서독을 상대로 약달러 기조를 밀어붙였다. 이후 3년이 채 안 돼 달러는 엔과 마르크에 대해 각각 50%, 30% 넘게 평가절하됐고, 미국의 무역수지는 1990년을 전후로 거의 균형을 찾았다. 반면 일본은 ‘잃어버린 30년’의 터널에 들어섰다.

하지만 지금은 세계 경제에서 미국의 비중이 40%를 웃돌던 플라자 합의 때와 상황이 다르다. 최대 무역적자국은 글로벌 패권에 도전장을 내민 중국이고, 멕시코·베트남 등 신흥국들의 협조도 필요하다. 게다가 인플레이션 우려가 여전한 상황에서 급격한 약달러는 물가 리스크를 더 키울 수 있다. 우격다짐으로 환율전쟁을 벌이기 어려운 것이다. 트럼프가 동맹·우방국에 ‘관세-안보 연계’ 카드를 내미는 건 이 때문이다.
관세-안보 연계 전략은 스티븐 미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의 지난해 11월 보고서(글로벌 무역시스템 재구조화를 위한 사용자 가이드)에 등장한다. 그는 제2의 플라자 합의를 염두에 둔 듯 ‘마러라고 협정’을 적시했고, 협정에 대한 호응도와 대중국 압박 참여도 등에 따라 ‘안보우산’의 수준과 비용을 차별화할 것을 제안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마러라고 별장에 오게 하는 데 필요하다면 파트너 국가들의 팔을 비트는 건 개의치 않겠다는 것이다.
환율전쟁으로 인플레 잡겠다는 트럼프
트럼프가 환율전쟁을 의식하는 이유에는 인플레이션 잡기도 포함돼 있다. 그 수단은 ‘월가의 현인’으로 통하는 졸탄 포자르의 아이디어로 ‘미란 보고서’도 언급한 ‘100년 만기 무이자 미국 채권’이다. 무역 상대국에 충분한 규모의 달러 스와프를 약속하고 해당국이 보유한 미국 채권을 100년물 무이자 영구채로 갈아타도록 강제하겠다는 것이다. 거부할 경우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발동해 기존 미국 국채 보유분에 수수료를 부과하거나 환율관찰대상국으로 지정하는 등의 압박책도 검토 중이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워싱턴=AP 연합뉴스
막대한 이자 지출을 감안할 때 100년물 무이자 채권은 재정 적자 해결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 국채 발행 물량을 줄여 금리 인하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모기지·회사채 금리 등과 연동돼 개인 소비와 기업 투자에 큰 영향을 미치는 10년 만기 국채 금리에 주목하고 있다. 트럼프가 공개적인 기준금리 인하 압박으로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독립성을 침해한다는 비판에 대해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우리는 10년물 국채 금리에 집중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시중은행의 자본건전성 규제 완화,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 활성화, 국부펀드 설립 등의 추진도 미국 국채의 수요를 늘려 금리를 낮추기 위함이다.

‘달러 패권’ 둘러싼 美中 충돌 불가피
트럼프가 환율전쟁을 불사하려는 기저에는 결국 달러 패권 문제가 있다. 기축통화국의 지위는 사실상 ‘돈 찍어낼 자유’이자 ‘만능 치트키’이고, 이를 통해 글로벌 패권국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은 베트남전과 오일쇼크, 닷컴버블 붕괴, 금융위기, 코로나19 등 막대한 예산이 필요하거나 경제가 휘청일 때마다 엄청난 양의 달러를 찍어냈다. 물론 이는 시차를 두고 어김없이 부메랑이 됐는데, 그 후과는 전 세계가 나눠 져야 했다.

IMF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현재 전 세계 외환보유고에서 달러의 비중은 58%이고, 전체 무역·외환거래의 88%가 달러로 이뤄졌다. 표면적으로 달러의 힘은 여전히 압도적이다. 하지만 브릭스(BRICS: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달러 영향권을 벗어난 단일통화 및 결제시스템 모색, 이에 대한 트럼프의 경고 등 달러 패권이 흔들리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시진핑(맨 앞줄) 중국 국가주석이 4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개막식에 입장하고 있다. 베이징=로이터 연합뉴스

특히 중국은 올해 재정적자 목표를 역대 최고 수준으로 높이면서 그간 후순위였던 내수 진작을 최상위 과제로 끌어올렸다. 또 ‘딥시크’의 성과 등을 강조하며 과학기술 예산을 지난해보다 10% 늘렸다. 미국의 관세 압박에는 협상과 보복 의지를 재확인했다. 미국의 일방적인 통화가치 조정 요구를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트럼프가 사실상 4년 단임 대통령이란 점도 감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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