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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2악장, 베토벤 내면의 강건한 고요

입력
2025.03.22 04:30
19면
32 0

음악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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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치는 루트비히 반 베토벤. 게티이미지뱅크

피아노 치는 루트비히 반 베토벤. 게티이미지뱅크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를 작곡했던 1809년, 베토벤은 여름 내내 박격포 소리에 시달렸다. 빈을 포위한 나폴레옹 군대가 고지대를 장악하면서 대포를 퍼부었던 것이다. 동생 집 지하실로 피신한 베토벤은 이미 청력을 심각히 상실했는데도 포격의 진동에 엄청난 공포를 느꼈다. "파괴적이고 무질서한 전쟁이 주위를 에워싸고 있다. 군대의 북소리와 대포 소리가 인간을 비참하게 만든다." 이때 베토벤을 정신적으로 보호했던 방패는 피아노 협주곡 <황제>였다. 끊임없는 포격 속에서도 이 곡을 놓지 않았다.

베토벤의 마지막 피아노 협주곡인 <황제>는 그가 남긴 5개의 협주곡 중 연주 시간이 가장 길고 음악적 캔버스도 거대하다. 형식의 몸집을 불려 고유의 정체성을 뚜렷이 확립했던 영웅적 중기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게다가 베토벤이 초연 무대에서 직접 협연하지 못한 유일한 피아노 협주곡이기도 하다.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청각장애로 작곡 과정부터 자신의 연주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 대신 베토벤이 가르친 제자였던 슈나이더나 체르니 같은 미래세대를 떠올렸는데, 실제 라이프치히와 빈의 초연 무대에 이들이 협연자로 나섰다.

<황제>란 부제는 베토벤이 스스로 붙이지 않았다. 음악적으로 광대한 캔버스에 거침없는 악상은 이 부제와 훌륭히 조응하지만, 여기에 나폴레옹을 떠올리는 건 온당치 않다. 나폴레옹에게 헌정했다가 스스로 황제에 올랐다는 소식을 접하고 분노했던 교향곡 3번 <영웅>조차 이 협주곡보다 5년 전에 작곡됐으니 말이다. 누군가는 출판사의 홍보전략이라 주장하고, 누군가는 다음과 같은 일화에서 유래한다 추정한다. 1812년 베토벤의 제자인 체르니가 협연했던 빈 공연에서 객석에 앉아있던 프랑스 장교가 "C'est l'Empereur!(황제다!)"라 외치며 감탄했다는데 베토벤의 수많은 일화처럼 신빙성은 부족하다.

개인적으로 이 협주곡의 백미는 가운데 악장이라 여겨왔다. 바깥 악장의 거대한 소란과는 달리 2악장은 고요하고 평온하다. 나폴레옹 군의 포격으로 심신이 괴로웠던 시기, 마치 영적 소리의 세계로 피난을 떠난 듯 성찰의 깊이가 배여있다. 베토벤은 군대를 연상시키는 트럼펫과 타악기를 아예 퇴장시켰다. 현악기마저 약음기를 부착해 영성의 음색을 표현한다. 올림표(#)를 5개나 붙인 B장조가 낯설고 신선한 음조를 구현하니 차분한 악상이건만 느슨하지 않다. 고도로 압축되어 크나큰 확성에 평온으로 저항한다.

세상의 혼란에 부화뇌동하지 않으려면 내면의 강건한 고요부터 다스려야 할지 모른다. 베토벤 협주곡 <황제>의 2악장을 들으며 성찰의 깊이를 단련할 수 있다면.

조은아 피아니스트·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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