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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역사전쟁과 복지정치

입력
2015.11.05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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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쟁이 클라이맥스를 향해 치닫고 있다. 여당과 야당이 대오를 갖추어 나만 옳다는 식의 치킨 게임을 벌이고 있다. 여권의 공격 포인트는 다수의 현존 교과서들이 건국이나 성장 같은 자랑스러운 근현대사를 왜곡한 끝에 패배주의를 심는다는 부분이다. 야권은 야권대로 대통령의 가족 관계까지 들먹이면서 의도가 불순하다거나 권위주의라며 맹공을 퍼붓는다. 매스컴도 덩달아 신이 났다. 이런 저런 여론조사를 들먹이면서 불 난 집에 부채질이다. 뉴스 속 고담준론(高談峻論)을 지켜보는 국민들만 어안이 벙벙하다. 먹고살기가 빠듯한 가운데 또다시 정쟁인가 싶어 신물마저 올라온다.

지나가는 사람 중 열에 아홉은 역사 과목을 지겨워한다. 그러면서도 역사 공부가 중요하긴 하단다. 장삼이사(張三李四)에게 역사가 중요해 보이는 이유란 무엇일까? 역사를 알아야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어 현재를 제대로 살고 미래도 준비할 수 있다는 본능적인 믿음 때문이다. 두 번째 도약을 위한 패러다임 전환이 과제인 이때, 제대로 알아야 할 역사가 한국사뿐일까? 서양사학계의 볼멘소리에도 새겨들을만한 구석이 있어 보인다. 세계사의 맥락에서 한국사를 이해해야 글로벌 미래 전략 마련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 말이다.

중국의 추격세가 심상치 않다. 삼성전자나 현대기아차마저 불안불안한 형국이다. 추격자들의 가격경쟁력을 넘어설 방안은 창조기술의 확보뿐이다. 하루빨리 선발자 모드로 가자는 주장들이 도처에서 울려퍼진다. 따라하기 전략의 끝이 보인다는 얘기고 바꿔야 한다면 하루빨리 바꿔야 산다. 따라하기의 효용이 기대되는 분야가 없는 건 아니다. 선진국들에서 창조적인 경제생태계가 조성된 배경과 그에 관한 역사적 맥락을 재현하는 것은 따라할수록 좋은 일이다.

독립운동과 자랑스러운 건국,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기적적인 경제발전, 정치민주화로 이어지는 한국의 근현대사를 보면 참 대견하다는 생각이 든다. 선진국의 근현대사를 채우는 일반적인 발전 과정을 닮아있으면서도 속도와 규모의 면에서 독자를 압도하는 찬란한 성공 스토리다. 다만 한 가지 빠진 게 있다. 복지자본주의로의 전략 수정에 관한 성공담이 그것이다. 성장 전략의 홀로서기가 필요할 만큼 선진 경제로의 발 빠른 편입이 이뤄졌지만, 오로지 ‘복지국가 만들기’만은 제대로 된 따라잡기조차 해 본 적이 없는 게 우리 역사다.

복지국가 만들기에서도 한국형의 창조 전략이 필요할 테지만 무에서 유를 창조하자는 것은 과욕에 불과하다. 후발자가 선발자를 따라잡는 가장 쉬운 길은 그들의 성공을 취하고 실패를 피하는 것이다. 일자리 없는 성장과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자리의 창출, 양성불평등한 자본주의와 저출산 문제의 해결, 불평등이 야기하는 갈등 비용과 복지 확대를 통한 갈등 완화! 잘못된 복지로 망조(亡兆) 든 나라의 실패담과 복지국가를 제대로 가동시켜 자본주의의 두 번째 도약을 가져온 성공담에 관한 역사 교육이 필요한 순간이다. 국정교과서 근현대사 편에 등장할 성공의 빛이 바래지 않게끔 하기 위해서라도 선진국 자본주의 수정의 역사부터 제대로 읽어야 한다.

지난 역사에 대한 해석이나 평가를 바르게 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현실의 개혁과 미래 전략의 창출은 훨씬 더 중요한 일이다. 부모 세대에 일군 성공을 자식 세대에게도 물려줘야 할 우리 세대의 책임 때문이다. 선거 코앞에서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정국이다. 야권 정치인들이 여권의 자충수요 자신들에겐 호재라고 했단다. 역사전쟁이 선거용 패싸움으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자랑스러운 한국 근현대사의 21세기 편을 무엇으로 어떻게 채워갈 것인가부터 고민해야 한다. 이념정치냐, 복지정치냐? 또 다시 돌아온 선거의 계절, 현실정치의 역사성에 관한 성찰부터 필요해 보인다.

안상훈 서울대 교수ㆍ사회정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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