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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소가 오히려 편했어요” 성 판매 여성을 대하는 우리의 자화상

입력
2016.08.25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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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판매 여성들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신분 노출이다. 그들은 성 판매 여성이라는 신분이 노출되는 상황이 죽고 싶을 만큼 견디기 힘들다고 고백한다.

성 판매 여성들에게 ‘하는 일을 가족이나 주변 사람에게 알리겠다’는 업주와 사채업자의 협박이 다른 무엇보다도 위협적이다. 이는 곧 미래의 삶을 파탄 내 버리겠다는 소리와 똑같다.

성 판매 여성에게 가족은 가장 밀접한 존재이지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알면 안 되는 존재이기도 하다. 게티이미지뱅크
성 판매 여성에게 가족은 가장 밀접한 존재이지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알면 안 되는 존재이기도 하다. 게티이미지뱅크

가족이 깨우쳐 준 ‘밝혀지면 끝장’이라는 절박함

룸살롱과 안마시술소 등에서 5년간 일하다가 지금은 다른 일을 찾고 있는 A씨는 ‘누군가 찾아올 것 같은 불안감’을 늘 느낀다. A씨는 “과거를 아는 사람과 연락하기 싫다”며 “스토커 손님이든 사채업자든 언제 불쑥 나타나 미래를 쑥대밭으로 만들까 봐 불안하다”고 말했다.

이런 불안감은 ‘아무리 나를 아끼는 사람이라도 성 판매 전력을 알면 더 이상 인간적으로 대접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사회적 낙인에 대한 누적된 경험, 심지어 ‘끝까지 내 편’이라 믿었던 가족에게마저 경멸과 무시를 당하면서 ‘과거를 봉인해야 한다’는 심리적 중압감이 크게 작용한다.

B씨는 성 매매에서 벗어난 뒤 가족과 함께 살고 있지만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가족의 시선에 좌절한 경험이 있다. 저녁에 외출이라도 하면 “어딜 그렇게 돌아다니냐? 옛날 버릇 나오냐? 옛날에 하던 짓이 있는데”라는 경멸이 가득한 핀잔을 들었다.

가족이 성 판매 전력을 모르는 C씨는 “가족이 알게 되면 호적에서 빼버리고 다시는 보지 않을 것 같다”며 “가족들이 알게 되는 순간 살아 있어도 사는 게 아니다”고 힘든 심경을 토로했다.

무엇보다 부부나 연인들 사이에 성 판매 전력이 관계를 망가뜨린 경우가 도드라진다. D씨는 다방에서 일할 때 ‘빚을 갚아주겠다’며 결혼하자고 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남편이 과거를 끄집어내는 일이 잦다. D씨는 “잠자리를 두고 ‘손님이어도 그렇게 하겠냐?’고 하더라”며 “남편이 화날 때 마다 내가 상처를 받든 말든 그렇게 과거를 한 번씩 끄집어 낸다”고 고백했다. D씨는 언어 폭력을 넘어 물리적 폭력을 경험했고 우울증과 자살충동까지 느끼는 단계에 이르렀다.

A씨는 과거 고백 후 남자 친구가 돌변했다. 그는 “처음에는 철저히 숨기고 만났는데 거짓말을 하는 게 너무 힘들어 밝혔다”며 “그랬더니 그 전까지 성관계도 갖지 않고 저를 아껴주려고 노력했던 사람이 확 변해서 마구 대하는 바람에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성 판매 여성에 대한 편견 때문에 발생하는 차별은 사회 곳곳에서 감지된다. 학교에서 발생하는 집단 따돌림, 성소수자 등 사회적 소수자의 관점에서 성 판매 여성을 바라볼 때 그들의 인권은 보호받을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성 판매 여성에 대한 편견 때문에 발생하는 차별은 사회 곳곳에서 감지된다. 학교에서 발생하는 집단 따돌림, 성소수자 등 사회적 소수자의 관점에서 성 판매 여성을 바라볼 때 그들의 인권은 보호받을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너무도 어려운 사회화

성 판매 여성들은 신분을 숨기려고 해도 생활 습관이나 복장 등에서 적잖게 노출되는 경우가 많다. 그 경우 이들은 가족이나 연인처럼 가까운 사람들조차 등을 돌리는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세상은 나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생각과 함께 신분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성 매매 업소를 편안한 공간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성 판매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다가 상당수 여성들이 업소로 돌아가는 이유는 경제적 궁핍때문만은 아니다. 이들을 보듬지 못하는 사회의 폭력적 시선이 성 산업을 견고하게 만드는 데 일조하는 셈이다.

E씨는 성 판매 여성이 모여 사는 동네에서 일반 주택가로 이사했으나 배타적인 시선 때문에 동네를 떠나야 했다. 그는 “성 판매 여성들이 모여 사는 동네는 이들 덕분에 먹고 사는 식당, 세탁소, 미용실 등이 많아서 차별하지 않는다”며 “그런데 일반 동네에서는 성 판매 여성을 벌레 대하듯 한다”고 털어 놓았다.

E씨는 “회사 다닌다”고 하고 세를 들었는데 1주일 정도 지나서 집 주인으로부터 “회사 다닌다면서 늘 저녁에 나가 새벽에 들어오냐”며 “술집 다니는 게 자랑도 아니고 새벽에 시끄럽게 하지 말라”는 소리를 들었다. 더러 낮에 자고 있을 때 집주인이 초인종을 누르며 집을 깨끗이 사용하라고 닦달을 한 경우도 있다.

실제로 성 판매 여성들은 사회 곳곳에서 차별적인 시선과 함께 모욕적인 언행을 감내한다. “무슨 일 하길래 매일 드라이를 하느냐?”라고 묻는 미용사, “남자친구가 어떻게 하길래 매번 헐어서 오냐”는 산부인과 의사, “요즘 손님 많냐”고 대놓고 묻는 택시기사 등 성 판매 여성들은 일상 곳곳에서 물위에 떠 있는 기름처럼 사회와 섞이기 힘든 경험을 하게 된다.

성 판매 여성들을 탈 성 매매로 이끌려면 사람들의 인식 변화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 전문가들은 성 판매 여성들을 ‘소수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라고 주문한다. 여성학자 원미혜씨는 ‘경계의 차이, 사이, 틈새’라는 저서에서 “우리 사회에서 성 판매 여성을 비난하지 않고 이해하려면 소수자라는 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며 “성 판매자의 인권이란 성 판매자라는 이유로 차별 받지 않을 권리뿐 아니라 성 판매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강제로 내몰리지 않을 권리까지 포함한다”고 주장했다.

즉 ‘소수자 관점’이란 성 판매 여성에 대해 더럽다는 생각 대신 ‘일반적이지 않은 삶을 살았을 뿐’이라는 차이를 인정하는 시선을 말한다. 전문가들은 이런 방향으로 사회적 인식이 바뀔 때 성 매매를 자연스럽게 근절할 수 있는 사회적 토대가 형성될 것으로 보고 있다.

김경준기자 ultrakj7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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