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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카네이션은 유죄, 김영란은 무죄

입력
2017.05.1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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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2016년 10월 31일 월요일 맑음. 초등 3학년 아들 녀석이 핫팩 5개를 밀반출하려다 엄마에게 걸렸다. 모자 간 문답이 오간 뒤, 원래 새벽에 청소 노동하는 장인 장모를 위해 마련해둔 물건은 제자리를 찾았다. 그날 녀석의 일기는 이렇다.

‘선생님께 핫팩을 드리고 싶다. 왜냐하면 선생님이 추울 것 같아서이다. 하지만 나는 김영란법을 꿈에도 몰랐다. 선생님이 추울까 봐 드리고 싶었는데 정말 아쉬웠다.’

며칠 뒤 일기 밑에 담임교사의 답이 달렸다. ‘하하~^^; 건우 마음만으로 이미 선생님은 뜨끈뜨끈해졌단다. 걱정 마~ 선생님은 이미 충분히~ 건우에게 고마워한단다!!’ 사제 간 필담이 어찌나 살갑던지 핫팩 다섯 개를 가슴에 몽땅 붙인 기분이었다.

녀석의 선생님 사랑은 남다르다. 1학년 때 담임이 이듬해 6학년을 맡자 그 교실을 쉬는 시간 기웃거리는가 하면, ‘교사가 시켰나’ 의심이 들 정도로 선생님 자랑을 재재댄다. 이유는 군더더기 없다. “선생님이 보고 싶어서.” “선생님이 좋아서.” 하긴 뭘 더 갖다 붙이랴.

이제 4학년이 된 녀석에게 물었다. “김영란법이 뭐지.” “잘 봐달라고 선물을 주면 안돼요. 그냥 주고 싶긴 해요.” “카네이션도 안 되는데.” 이어 그 까닭을 장황하게 설명했다. “괜찮아요. 편지 쓰면 돼요.” 미수에 그친 사건 덕에 녀석은 청탁금지법(김영란법)을 확실히 가슴에 새긴 셈이다.

올해 스승의날 즈음은 유난히 말도 많았다. ‘아이의 정성이 담긴 카네이션조차 막는다’ ‘현실을 무시한 법이 혼란만 부추긴다’ 등 대개 청탁금지법의 허점을 에두른 꾸지람이 앞섰다. 카네이션과 캔 커피가 법을 조롱거리로 만들었다는 탄식도 들렸다. 오지랖 넓게 화훼농가의 한숨까지 곁들여졌다.

정작 탈은 없었다. 아이들은 물질 대신 각자 개성을 살려 마음을 전했고, 그 모습이 가슴에 달린 꽃보다 아름다웠다. 아들 학교 역시 ‘선물마감’(선생님께 물질이 아닌 마음으로 감사하기) 운동, 즉 편지쓰기로 갈음했다. ‘물질로 교사들의 사기를 꺾지 말라’는 당부와 함께.

카네이션이 스승의날에 등장한 건 1970년대로 추정된다. ‘존경’이라는 꽃말 덕에 낙점 받았을 터. 따져보면 버젓이 한글날이 있는데도 65년 ‘겨레의 위대한 스승’ 운운하며 세종대왕의 탄신일 5월 15일을 스승의날로 정한 것 자체가 난센스다. 58년 충남 강경여고 학생들이 퇴직 또는 병환 중인 교사를 위문하던 자발적 모임은 봉건과 독재의 내피를 두르고 국가주의 행사로 거듭났다. 그러니 그 연원은 평가를 직접 담당하는 교사에게 카네이션과 선물을 안기는 현재의 틀과 사뭇 다르다.

사제 간 정을 나누는 참뜻마저 태생을 문제 삼아 시비 걸 생각은 없다. 꽃 한 송이도 부담스런 가난한 이웃 외면, 종이ㆍ조화ㆍ생화ㆍ다발ㆍ바구니 등 꽃조차 빈부가 갈리는 세태, 물질을 볼모로 교사 학생 사이에 부모가 끼어드는 행태, 한날 한시 집단적으로 강요된 존경이 옳은지 묻고 싶을 뿐이다.

내 아이의 선생님이 어떤 분인지, 얼마나 멋진지 나누긴커녕 어떤 선물, 얼마짜리 카네이션을 해야 하나 서로 눈치를 살피는 부모들의 SNS 단체대화는 우리들의 서글픈 자화상이다. 미풍양속으로 포장된 그 오염된 관성을 멈추는 페달이 청탁금지법이기를 바란다. 여전히 “고사리 손에 종이 꽃 정도는 들리게 해줘야 한다”는 이들이 있다. 일면 수긍하지만 한번 뚫린 구멍은 절대 작아지는 법이 없다. 댐이 무너지기도 한다. 아예 틀어막아야 한다.

지방출장 다녀오던 길에 15년 만에 예고도 없이 시골 모교를 찾은 적이 있다. 카네이션을 달아드렸는지 기억엔 없는, 그러나 또렷한 생애 첫 돈가스의 맛과 “기자가 되라”던 말씀을 선물한 중2 국어선생님이 홀린 듯 보고 싶었다. 그 만남은 13년이 지난 지금 꺼내도 설렌다.

꽃은 시들지만 존경은 바래지 않는다. 물질은 차별하지만 마음은 공평하다. 꽃 타령, 법 타령은 그만 두자. 대신 담당 교사가 얼마나 좋은 선생님인지 자녀와 얘기해보길 권한다.

고찬유 사회부 차장 jutd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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