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벼랑 끝에서 기사회생’한 셈이 됐다. 그 손을 잡아준 것은 다름아닌 ‘법원’이 됐다. 지위를 이용해 수행비서를 성폭력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게 지난 14일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3월 5일 안 전 지사의 수행비서였던 김지은씨가 TV뉴스에 출연해 성폭력 피해 사실을 폭로한 날로부터 162일 만에 내려진 결론이다.
차기 유력 대권주자이자, 충성도 높은 팬층을 거느린 정치인이자, 한때 충남도를 책임지는 도지사였던 안 전 지사는 도저히 교도소만은 갈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는 결심공판에서 “도덕적 사회적 비난은 감수하겠으나, 다만 법적 책임은 잘 판단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고, 이에 답하듯 재판부는 선고에서 “사회적ㆍ도덕적 비난과 형사법적 책임은 달라야 한다”고 적시했다. 그러나 재판부 말처럼 사회적ㆍ도덕적 책임과 법적 책임이 무 자르듯 나눌 수 있는 것이라면 좋으련만, 법원 판단은 면죄부 기능을 하기도 해서, 이 결론으로 김씨의 호소는 ‘거짓말’이 되고 안 전 지사는 ‘결백한 사람’이 될 공산이 크다.
법원은 번복되는 말과 태도의 모호함을 들어 김씨의 ‘피해자로서의 진정성’을 의심한 모양이지만, 그렇다면 김씨의 폭로 다음날 “모든 분께 죄송”하고 “김지은씨에게도 정말 죄송하고”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는 비서실의 입장은 잘못”이라던 안 전 지사의 고백은 무엇이었을까. 우리 법의 한계를 지적하며 그에 대해 내린 법원의 무죄 판결은 일반의 상식과 괴리돼 있다는 지적이 많다. 우리 사회가 또 다른 숙제를 떠안은 셈이다.
안 전 지사는 무죄 판결이 내려지고 카메라 앞에 서서 “다시 태어나겠다”고 했다. 그러나 불교 교리에 따르자면, 다시 태어나는 것, 즉 ‘환생’은 자신이 저지른 행위와 업에 따라 결정된다. 내뱉은 말과 저지른 일의 책임을 충분히 다한 이후에라야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안 전 지사는 과연 그 책임을 다했을까?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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