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이번 주 단행한 ‘중폭 개각’에 한반도 주변 4강 중 세 나라의 신임대사 내정도 포함됐다. 이 중 지난 1월부터 공석 중인 주중대사직에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결정됐다. 그가 사퇴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의 재등용을 두고 ‘회전문’ ‘돌려 막기’ ‘캠코더(캠프, 코드, 더불어민주당)’ 등의 인사라는 비판이 들끓고 있다. 보은 인사의 관행에서 탈피하지 못하는 ‘촛불혁명’정권에 대한 낙담이 가득 찬 표현들이다.
문제는 장하성 전 실장의 외교 경력이나 중국 전문성 부족이 아니다. 자의든 타의든 ‘경제정책의 실패’ 이유로 사퇴한 인물을 다시 등용한 것도 별문제가 안 된다. 자격만 충분하면 국민들은 용납할 수 있다. 문제의 심각성은 주중대사직이 보은 인사식으로 채워진 사실이다. 대통령의 해명은 궁색하기 짝이 없었다. 신임대사 내정자의 과거 중국 방문학자 경력과 책 출판 등을 예로 들면서 ‘중국통’임을 강조했다.
누가 그런 대통령의 발언을 원망하랴. 언젠가부터 주중대사의 보은 인사는 관행화되었다. 이런 관행의 논리는 간단하다. 중국이 주변 4강 중 제일 중요한 나라 중 하나이므로 대통령과 직접 소통이 가능한 최측근 인사가 적합하다는 것이다. 이런 당위성은 대사직뿐 아니라 상하이와 홍콩 총영사직에까지도 해당된다.
한반도 외교에서 중국이 미국 다음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에는 틀림이 없다. 고구려에 낙랑군을 주둔시킨 한나라 때부터 한국전쟁에 참전한 중화인민공화국까지 중국은 우리의 국운을 갈라놓은 사건에 거의 개입했다. 한반도와 중국의 지리적 근접성으로 이들의 지정학관계는 숙명적으로 변했다. 이런 이유로 북한 비핵화와 통일 등 한반도의 미래 문제에 중국의 관여 가능성 또한 현실로 인지되는 실정이다. 세계 최고 수준인 우리의 대중국 경제 의존도 역시 우리 경제가 중국과 운명을 달리할 수 없는 지경학적 요인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그런데 최근 우리 정부의 중국 외교관직에 대한 보은 인사가 연속된 폐단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임기를 채우지 않고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귀국했다. 이유도 다양하다. 한 상하이 총영사는 의원 출마를 위해 사퇴했다. 또 다른 상하이 총영사와 전임 대사도 각각 정부와 대통령의 ‘부름’으로 사임을 정당화했다. 또 다른 보은 인사는 아시아인프라개발은행(AIIB)의 부총재직을 아무 설명 없이 몇 개월 만에 사임했다. 이로 인해 혈세로 얻은 우리의 AIIB의 지분은 부총재직에서 국장직으로 강등되었다.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의 중추 기관에서 우리의 입지와 발언권이 축소되었다.
중국 대사직은 고충도 많다. 언젠가부터 우리 대사들이 중국 당국의 홀대와 멸시를 당하기 시작했다. 중국 외교부의 차관보조차 알현(?)하기가 거의 불가능해졌다. 이들의 인적 네트워크도 문제다. 중국의 대인관계 전통은 ‘관시(關係)’에 기반한다. 수집한 명함이 많다고 친분의 수준을 뜻하지는 않는다. 소통의 언어능력도 필요하다. 사담에서 중국인은 중국어를 선호한다. 중국에 대한 교감 능력이 소통을 담보한다. 중국 외교에서 이는 중국 정부의 입장에 대한 이해 정도를 의미한다. 그래야 중국과 협상과 타협이 가능하다.
우리는 북핵과 영구적인 평화 정착 등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하는 과제에 봉착했다. 중국은 이 문제에서 자신의 정당한 역할과 지분을 주장하면서도 우리와의 외교를 경시한다. 왜 그럴까. 보은 인사의 폐단으로 나락에 떨어진 우리의 국가신뢰도와 무관하지 않다. 개인의 영화를 위해 거쳐 가는 요직으로 치부하는 이보다 역사적 책임과 사명을 통감하는 인사가 절실하다. 대통령이 아닌 중국과 소통 가능한 이가 필요하다. 중국전문가로서 낯 간지럽지만 한중관계와 우리의 국익에 기여할 수 있는 진정한 중국통에게도 공정한 기회가 제공되어야 한다.
주재우 경희대 교수ㆍ국제정치학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