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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청년들의 분노에 어떻게 답할 것인가

입력
2019.08.28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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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보호를 요구하는 시위가 25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려 청소년들이 행진하고 있다. 포토아이
아마존 보호를 요구하는 시위가 25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려 청소년들이 행진하고 있다. 포토아이

지구의 허파라 불리는 아마존이 심각한 화재로 불타고 있다. 그런데 이를 가장 걱정하는 쪽은 브라질보다는 유례없는 폭염을 겪고 있는 유럽의 국가들이다. 아마존의 산림이 사라지면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기후 위기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면서 청년들의 분노의 행동이 확산되고 있다. 기후 비상사태에 안일한 정치권과 기성세대에 대한 항의다. 지구의 파멸로 미래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이 이들을 분노하게 하고 있다. 이제 국경을 넘어 전 지구 차원의 공동 행동이 준비되고 있다. 당장 다음달 21일 유엔 기후변화 세계정상회담을 향한 전 지구적 동시다발 시위가 열릴 예정이다. 전 세계 수백만 명이 참여할 공동 행동을 위해 우리나라에서는 ‘기후위기 비상행동’이라는 전국 연대조직이 출범했다.

과거에는 지구 위기에 대한 항의가 주로 환경단체의 몫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주도세력은 SNS로 무장한 청소년들이다. 그들은 기후 변화의 가장 큰 피해자이고 직접 이해당사자이다. 기후 위기가 그들에게는 너무 절박하다. 당장 행동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을 것이라는 과학적 연구결과들이 끊임없이 발표되고 있다. 분노할 수밖에 없다.

청년들의 분노의 대상은 분명하다. 기후 위기를 조장해온 사회시스템과 이를 유지하고 있는 기성세대들이다. 이제 청년들의 행동은 온건한 시위를 넘어, 기존 질서를 부정하는 체제 전복까지 나아가고 있다. 화석연료가 만들어 낸 문명세계에 대한 반란이다. 영국의 기후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멸종 저항’이라는 단체의 명칭이 기후 변화에 대한 이들의 절박한 위기의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청년들이 분노하는 가장 주요한 대상에 우리나라가 있다. 한국은 세계에서 7번째로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나라이자, OECD 국가 중 이산화탄소 배출 증가율이 가장 높은 국가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점은 청년들의 분노에 찬 행동이 가장 격렬한 곳은 다름 아닌 유럽 국가들이라는 것이다. 기후 변화의 모범국가일수록 청년들의 분노지수가 높은 것 같다. 멸종 저항 운동이 가장 격렬한 영국은 세계 최초로 탄소배출제 법안을 제정한 온실가스 감축 정책의 모범국가이다. 프랑스와 뉴질랜드도 비슷하다. 이 국가들의 정부에서 볼 때는 억울할 만하다.

현실의 부조리에 대해 청년들의 분노의 목소리가 높은 것은 사회가 건강하다는 증거다. 문제는 청소년들의 주장이 기성세대와 기득권층에는 현재의 제도에서 수용할 수 없거나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청년들의 행동은 당장 내놓을 수 없는 답을 내놓으라며 보채는 것과 같다. 그렇지만 어쩌랴, 이대로 가면 우리들이 살 미래는 없다는 청년들의 외침은 틀린 것이 아니다.

청년들의 분노에 관심을 보이는 기성세대의 일반적인 태도는 두 가지다. 하나는 행동에 동참하고 한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이들은 청년들보다 훨씬 과격한 주장을 하는 경우가 많다. 다음으로는 가짜 뉴스와 짧은 지식으로 치우친 청년들의 주장을 바로잡고자 지적하고 가르치는 경우다. 두 경우 모두 자신은 분노의 대상이거나 문제를 책임져야 할 당사자는 아니라는 생각을 은연중 하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는 청년들의 분노에 대한 답을 줄 수 없다.

청년들의 분노가 자신을 향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기성세대는 많지 않은 것 같다. 나의 탄소배출량이 작다고 해서 기후 위기에 대한 기성세대의 공동 책임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기후 위기에 대한 청년들의 분노는 일부 국가나 소수의 사람들이 책임질 수 없는 문제다.

어떻게 하면, 청년들의 분노를 희망으로 바꿀 수 있을까. 청년들의 분노를 높이거나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분노를 떠안으려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청년들의 분노에 대해 답하기가 쉬워질 것이다.

최동진 기후변화행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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