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초에 독일에서 열린 유럽 노사관계 학회에 참가해서 최근 동향을 살펴보았다. 우선 4차 산업혁명이 유럽의 고용 및 노사관계에 미치는 영향이 학회의 가장 큰 관심사였다. 제조업에서는 디지털화가 생산 현장에서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었다. 그렇다고 사람의 노동이 확 줄어든 것은 아니다. 기계가 사람을 대체한 것이 아니라 노동 방식이 더 통합되고 업무 집중도가 높아지는 과정이 전개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에 의한 일자리의 감소나 로봇에 의한 일자리의 대체는 아직까지는 별로 근거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직접 생산하는 노동은 다소 줄었지만 제조서비스 노동이 늘어 양적으로 일자리의 수는 줄지 않고 있다.
그런데 노동 강도는 강화되었다. 사람간의 단순한 업무 처리가 아니라 디지털로 연계된 업무 흐름이다보니 보다 집중해야 하고 로봇이나 인공지능 및 사물인터넷 기술을 도입한 복잡한 생산 흐름을 이해해야 하다 보니 현장에서 신경 써야 할 일들이 많다. 자연히 역량 부족이 나타나고 업무 스트레스가 문제된다. 그래서 노조들은 새로운 기술을 익힐 직업 훈련과 재훈련을 요구하고 스트레스로 인한 육체적 또는 정신적인 질병을 예방하기 위한 산업 안전과 보건 이슈에 주목하고 있다.
서비스 산업에서는 다소 심각한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프로젝트별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을 모아 일하는 단기간 계약이 확산되고 우버나 비슷한 온라인 기반 서비스 제공 회사가 속출하여 전통적인 일자리나 고용 계약이 희미해져 가고 있다. 매장을 가지고 물건을 팔던 회사가 온라인 영업으로 돌아서면서 피고용인들이 줄어들고 독립적 사업자 계약이 늘고 있다. 노동법 학자들은 고용 보호를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경제학자들은 시장 규칙을 침해하지 말고 일자리를 넘어서 일반적인 사회적 보호로 갈 수밖에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결국 급격한 일자리 감소를 막고 일자리의 안정성을 도모하기 위해선 제조업을 강화하고 제조업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리고 제조업 노동자들의 직업 능력 강화와 현장 중심 평생 학습을 실천해야 한다. 노사 간의 단체교섭에서도 이를 반영해야 한다.
디지털 경제의 확산은 서비스 산업의 혁신과 IT 업종을 중심으로 스타트업(start-up) 기업들의 창업을 촉진한다. 노키아 왕국의 붕괴 이후 극심한 경제 위기에 놓여 있다가 최근 스타트업 기업들의 활성화로 경제가 살아난 핀란드의 사례가 대표적인 성공사례이다. 그러나 이런 혁신기업들에서는 소수의 창의적인 인재들이 중요하지 다수의 노동력이 중요한 게 아니다.
아마도 서비스 산업에서는 빨리, 그리고 제조업에서는 다소 늦게 찾아올 일자리와 고용관계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선 사회적 보호가 더 강화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는 유럽에서도 과거의 복지국가적 사회적 보호를 강화하자는 것은 아니다. 세계화된 경쟁 환경이 조세와 재정을 편하게 늘리는 것을 방해하고 선진국들의 고령화는 복지 대상은 늘리고 세금 낼 사람들은 줄이는 작용을 한다. 전통적인 복지국가이면서도 국제 경쟁력을 중시하는 경쟁 국가라는 이중성을 가진 핀란드에서도 올해 들어선 좌파 연립정부는 포용적 성장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포용적 성장은 유럽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기술 혁신에만 의존하지 말고 인적 자원의 혁신과 같이 디지털 경제에 대응하자는 것이 포용적 성장이다. 디지털 기술과 사람이 가진 기능 간의 융합을 주도하고 미래의 직무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선 평생학습이 강화되어야 한다. 고용계약 관계가 흔들리고 누가 사용자인지 불분명해지는 디지털 경제와 고령화로 일할 사람도 줄어드는 조건에서 최선의 사회적 보호는 사람들이 노동시장에서 퇴장하지 않고 기술 혁신에 맞서 생존하도록 평생학습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장원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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