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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문제는 ‘세대’가 아니라 부의 ‘세습’이다

입력
2019.11.01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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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에 태어난 세대처럼 운 좋게 한국 경제의 황금기에 사회생활을 시작했다면, 다른 세대보다 경제적 형편이 더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계급 간 불평등과 그 불평등이 세습되는 문제를 가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게티이미지뱅크
60년대에 태어난 세대처럼 운 좋게 한국 경제의 황금기에 사회생활을 시작했다면, 다른 세대보다 경제적 형편이 더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계급 간 불평등과 그 불평등이 세습되는 문제를 가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게티이미지뱅크

불평등한 세상에 특권을 가진 기성세대라는 것이 청년들에게 미안하고 부끄럽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세대 간 불평등이 계급 간 불평등을 덮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오래된 이야기지만, 80년대의 대학 진학률은 30%를 조금 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열 명 중 오직 선택받은 세 명만 대학에 진학했다. 더욱이 당시에도 학벌의 위계는 대단히 공고했기 때문에, 그 좁은 문을 통과한 86세대 모두가 엘리트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80년대에도 기회는 공평하지 않았고, 과정은 공정하지 않았으며, 결과도 정의롭지 못했다.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은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밀접히 관련돼 있었다. 전두환 군사정권은 과외를 금지했지만, 권력과 돈 있는 집 자제들이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몰래바이트’라고 불린 고액 불법 과외를 받았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었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경우가 있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일이었다. 예외적이었기에 학력고사가 끝나면 개천에서 용이 된 청년들에 대한 보도가 넘쳐났던 것이다.

60년대생으로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세대를 지칭하는 ‘86세대’라는 용어가 60년대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쓰이는 것이 불편한 이유다. 50대가 된 86세대가 재계, 정계, 학계, 언론을 장악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특권의 중심에 있는 86세대는 지금 하루하루 생존을 위해 눈물겨운 싸움을 이어가는 평범한 청년들의 평범한 부모들이 아니다. 60년대생의 절대 다수는 대학에 다니지 못했고, 누군가 말하는 그런 특권을 갖고 있지도 않다.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던 60년대생의 소득이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다른 세대와 비교해 조금 높다고 그들 모두가 세대의 특권을 누리고 있다는 주장은 세대 내에 존재하는 심각한 불평등을 보지 않는 것이다. 한국 사회가 직면한 심각한 불평등의 본질은 60년대생이 이후 출생한 세대에 비해 더 특권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는 것이 아니다. 본질은 60년대생 중 특권을 누리고 있는 소수 엘리트 집단의 자녀들이 어려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대다수 60년대생의 자녀들보다 더 좋은 삶의 기회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부와 특권이 세습되고 있는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경제적 불평등과 관련된 상식 중 하나는 세대 내 불평등이 항상 세대 간 불평등보다 더 심각하다는 것이다. 60년대에 태어난 세대처럼 운 좋게 한국 경제의 황금기에 사회생활을 시작했다면, 다른 세대보다 경제적 형편이 더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계급 간 불평등과 그 불평등이 세습되는 문제를 가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86세대가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는 민주화가 이렇게 불평등한 세상을 만들었다는 것은 역설적이다. 하지만 민주화 과정을 보면 이는 예견된 결과였다. 86세대의 일부가 열정적으로 민주화에 헌신한 것은 사실이지만, 1987년의 민주화는 독재 세력과 기득권 집단의 특권을 일소하지 못했다. 아니 일소할 수 없었다. 87년의 민주화는 일소돼야 했던 독재 세력과 기득권 집단이 주도한 ‘거래를 통한’ 민주화였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제구조가 중소기업과 대기업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복선형 성장체제에서 재벌 대기업이 주도하는 수출 중심의 조립형 성장체제의 성격이 강화된 것도 한국 민주화의 이런 특성 때문이었다.

불평등의 원인을 세대 담론으로 설명하는 것은 자극적이다. 꼰대들이 문제라니 청년들의 적이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대 담론은 부와 특권이 세습되는 현실을 가리는 위험한 담론이 될 수 있다. 본질은 세대가 아니라 사회적 지위와 부가 대를 이어 세습되는 불평등이다. 그리고 그 불평등을 끊는 것은 세대 간 반목이 아닌 오직 세대를 가로지르는 특권 없는 사람들의 연대이다. 문제는 세대가 아니라 부가 세습되는 계급이다.

윤홍식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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