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읽었던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최근 영화로 개봉돼 큰 화제가 되고 있다. 지금 영화를 놓고 남녀 간에 갈등이 있는 것처럼, 소설이 출간되었던 당시에도 이 소설은 오랜만에 한국 소설책을 읽겠다고 고르는 사람조차 듣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 책과 함께 여름휴가를 시작했었다.
책이 출간되었을 때 많은 여성의 공감을 샀던 것처럼, 최근 영화가 개봉된 이후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우는 여성들이 많았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하지만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물론, 책을 읽는 동안에도 나는 ‘82년생 김지영’의 삶에 몰입되지 않았다. 그저 내게는 여느 소설에서 만나는 픽션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결국에 가서는 ‘아, 이거였지’ 하고 굉장히 오래된 기억을 끄집어내게 되었다.
‘82년생 김지영’을 보면 가장 먼저 다가오는 팩트는 결혼, 출산 그리고 경단녀의 삶이다. 결혼 후 출산은 자연스럽게 육아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많은 한국의 여성들은 알게 모르게 자신의 꿈을 버리라는 압박을 받게 된다. 머릿속에서는 배우자가 똑같이 육아의 책임을 가지고 있다고 되새기지만, 결국에는 당분간만 그렇게 하자고 자신을 속여 가면서 육아를 도맡는 선택을 하게 된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은 일생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 가운데 가장 행복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행복한 일을 하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꿈꿔 오고, 그를 위해 오랫동안 열심히 노력했던 자신의 모습을 모두 다 버려야만 하는 선택은 여전히 가혹하다.
경력을 포기하지 않는 워킹맘에게도 나름의 고충은 있다. 오랜 시간 직장생활을 한다는 것이 때로는 내 몸 하나 돌보기도 고달플 정도로 힘든 일이다. 그런데 여기에 항상 마음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아이가 있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한국 여성들은 시작하기 전부터 어느 정도의 어려움을 각오하기 때문에, 웬만한 정도로 힘들다고 울먹이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 항상 ‘아이가 너무 어린데 떼어놓고 나와도 괜찮냐’ ‘아이가 눈에 밟히진 않느냐’는 등의 눈치 없는 질문을 하면서 항상 엄마들이 가지고 있는 죄책감에 또 다른 죄책감을 더하려는 주변의 압박이 있다. 성장한 사춘기 아이가 엉뚱한 짓을 하면 엄마가 일하느라 바빠서 제대로 못 챙겨서 그렇다고 한다.
더 나아가 ‘82년생 김지영’은 결혼과 출산을 경험하지 않은 한국 여성들로부터도 공감을 끌어내기에 충분했다. 직접 경험하지 않아도 주변에서 자매, 친구, 선배, 혹은 직장 동료가 겪은 너무나 비슷한 이야기를 많이 듣고 봐서였을까. 아니면 또다른 김지영이 되고 싶지 않아 이미 이 모든 것을 포기했기 때문일까. 하여튼 모든 한국 여자들은 서러웠던 것이다.
처음 ‘82년생 김지영’을 접했을 때, 몰입되지 않았던 이유는 간단했다. 다행히 아들에게 단 한 번도 특별 대접을 해주지 않은 부모 밑에서 컸다. 일 때문에 많은 시간을 아이와 함께하지 못할 때는 오히려 일이 힘들겠다고 위로해 주는 친구와 가족이 있었고, 단 한 번도 육아나 가사노동을 도와준다는 생각으로 한 적이 없는 남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어쩌면 뻔뻔한 나 자신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또 다른 김지영이 되지 않으려면, 나 혼자서는 안된다. 주변의 모든 것들이 있어야 한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원작과는 약간 다르게, 공감대를 넓혔다고 한다. ‘82년생 김지영’을 통해 여자가 불행해지면 남자도 불행해진다는 공감대도 생겼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젠 모두가 변해야 할 때 아닐까. 물론 이 모두에는 우리 자신과 우리의 희생을 요구하는 모든 남자와 여자가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모든 한국 여성들이 때로는 자식, 가족에 앞서 자신을 먼저 챙길 수 있기를 바란다.
영주 닐슨 성균관대 경영전문대학원 GSB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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