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ㆍ15 총선을 하루 앞두고 이종걸 더불어시민당 선대위원장은 정의당을 향해 “경고장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민주당이 국민에게 약속한 연동형 비례대표제 정신을 유일하게 실천에 옮긴 당인 더불어시민당을 선택해 달라”고 호소했다.
여기에 맞선 김종철 정의당 선대위 대변인도 “연동형 비례제의 취지를 훼손하면서 출발한 ‘반칙정당’이 정의당과 같은 ‘원칙정당’에 경고를 운운하는 것은 참으로 오만한 일”이라고 비판하면서 “거대정당의 꼼수를 심판해 달라”고 호소했다.
결과적으로 이종걸 위원장의 호소는 적중했고, 김종철 대변인의 호소는 빗나갔다. 유권자들은 위성정당을 심판하지 않고, 미래한국당과 더불어시민당에 표를 몰아주었다. 오히려 유권자들은 내각제에 친화적인 다당제를 열어달라며 연동형 비례제를 추구했던 정의당, 국민의당, 민생당을 심판하고, 대통령제와 친화적인 ‘양당체제’를 구축했다.
다당제의 다양성보다는 양당제의 안정성을 선택한 유권자들의 민심에 따라 군소정당들은 몰락하는 역습을 맞았다. 이런 민심결과는 당초 연동형 선거법의 기대와는 다르다는 점에서 제도도입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왜 민심은 위성정당을 심판하지 않고, 그것을 허용했을까? 어떻게 이런 역습이 가능했을까?
이런 의문에 대해 장은주 영산대 교수는 페이스북(3월 20일)을 통해 “회수를 넘으면 귤이 탱자가 된다. 이 제도 역시 그렇다. 우리의 맥락, 우리의 상황, 우리의 역사, 우리의 조건에 대한 성찰 없는 제도 이식은 이렇게 코미디가 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역습 원인에 대해 여러 해석이 있지만, 정치풍토가 다른 한국에 합의없이 독일식 비례제를 순진하고 무리하게 이식하려다가 위성정당의 역습을 자초한 것으로 보는 게 적절하다. 두 가지 함정에 빠졌다. 첫째, 연동형 비례제 추진세력들은 독일의 제도를 한국에 무조건 꽂으면 된다는 ‘제도이식론의 함정’에 빠졌다. 진정한 제도개선론이 되기 위해서는 한국의 정치풍토와 외국제도와의 친화성을 따져보는 게 상식이다.
둘째, 그들은 연동형 선거법의 효과를 너무 좋은 쪽으로만 해석하고 알바니아나 레소토에서 위성정당이 출현해서 비례효과가 없었다는 사례들을 무시하는 ‘확증편향성의 함정’에 빠졌다. 전문가들은 독일식 비례제가 한국과 같이 지역주의 정당들의 하향식 공천문화가 있는 곳에서는 위성정당의 출현으로 비례효과가 훼손될 수 있기에 신중한 판단을 제안했었다. 이런 제안을 무시한 채 위성정당이 출현할 줄 몰랐다고 남 탓만을 하는 것은 게임경쟁에서 자기무능을 숨기는 너무 순진한 태도이다.
이번 선거는 대통령직선제에 부합하지 않는 다당제 추구세력과 중도수렴의 양당제를 추구하지 않는 좌우 극단세력을 심판함으로써 ‘듀베르제의 법칙’과 ‘다운스의 중도화법칙’을 관철했다. 이런 결과는 한국 정당의 문제는 ‘양당제’가 아니라 ‘극단적 양당제’가 문제라는 것을 웅변한다. 따라서 대안은 독일식 연동형 비례제와 친화적인 다당제가 아니라 한국식 병립형 비례제와 친화적인 ‘중도수렴의 양당제’가 적절하다.
양당제에 부합하는 정치적 다양성 실현은 빅텐트론과 선거연합정당론과 같은 방식이 적절하다. 즉, 한 정당 내 다양한 정파들이 병존하면서도 ‘포괄적 공론장’이 되게 하려면 ‘포괄정당모델’이나 ‘시민참여형 네트워크정당모델’ 그리고 ‘국민경선제방식’을 활용해야 한다.
예를 들어, ‘혁신과 통합’(시민통합당)이 민주당과 통합하고 민주통합당을 만들어 공천했듯이, 정의당과 민주당이 빅텐트를 치고 그 내부에 진보블록을 허용하는 방식으로 운영할 수도 있다. 사회주의자인 코빈이 영국 노동당 내 진보블록으로 있거나 미국 좌파인 샌더스가 민주당 경선후보로 나와 클린턴과 경선한 경우도 여기에 해당한다. 성찰이 필요할 때는 자기방어기제를 내려놓고 토론하는 게 필요하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