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국회’를 표방한 21대 국회가 시작되었지만 아직 일하는 분위기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그 배경에는 두 가지 사건이 있어서다. 두 사건 모두는 숙의민주주의와 의원자율성을 약화시키는 우리 국회와 정당의 현주소를 보여 준다.
첫째는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상반기 원 구성과 관련하여 “민주당이 18개 상임위원회의 모든 위원장 자리를 가져가는 것이 원칙”이라고 밝히면서 미래통합당이 반발한 사건이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승자독식으로 18개 상임위원장을 모두 가져간다면 국회가 일방적으로 운영되어 제대로 가동될 수 없다”고 반발했다.
둘째는 ‘공수처 설치법’의 국회 본회의 표결에서 기권한 금태섭 전 민주당 의원을 징계하자 그 근거가 된 ‘강제당론’이 의원자율성을 침해한다고 해서 논란이 커진 사건이다. 이해찬 대표는 “권고적 당론은 반대하되 자기 의견을 제시할 수가 있지만, 강제당론은 반드시 관철해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금태섭 전 의원은 “정당이 소속 국회의원의 표결을 이유로 징계하는 것은 대단히 중대한 일”이라면서 “조국 사태, 윤미향 사태 등에 대해서 당 지도부는 함구령을 내리고 국회의원들은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이게 과연 정상인가”라고 반발했다.
20대 국회가 몸싸움과 고소ㆍ고발전 속에 ‘역대 최악의 국회’로 얼룩졌던 만큼, 21대 국회는 ‘민생국회’로 가는 게 당연하다. 민주당은 일하는 국회를 만들기 위해 많은 준비를 해왔다. 국회법 개정을 1호 법안으로 정했다. 정당한 사유 없이 회의에 불참하는 의원의 세비를 단계적으로 삭감하는 페널티 조항도 넣었다.
하지만 이런 일하는 국회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동안 왜 일하는 국회가 되지 못했는지에 대한 엄밀한 원인 진단이 필요하다. 단순하게 출석률이 떨어지는 의원들이 많아서 세비를 삭감하면 해결될 문제인지, 아니면 출석을 하더라도 초당적인 의원들 간의 충분한 대화와 토론을 보장하지 않는 당론 중심의 조직문화가 문제인지 살펴야 한다.
5월 29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21대 국회의 역할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처럼, 국민들은 당 지도부가 정한 당론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거나 대치하면서 형성되는 대결의 정쟁문화가 일하는 국회를 방해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것은 의원들의 초당적인 대화와 토론을 보장하지 않는 정당의 집단주의적 조직문화가 개혁되어야 함을 웅변한다.
국회가 토론 없이 일만 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다수파 정당이 다수결의 논리로 밀어붙이고, 소수파 정당은 이에 반발하면서 법안의 졸속 처리나 늑장 처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토론 없는 대결의 20대 국회가 만든 졸속 법안의 대표적 예는 ‘연동형 선거법’과 ‘민식이법’이다. 특히 많은 차량 운전자를 규율하는 민식이법은 법 시행 당일인 3월 25일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과잉 처벌이라며 올라온 법개정 요구문에 34만여명이 참여할 만큼 이견이 컸다.
‘말하기’를 정치 행위의 본령으로 보는 정치학자는 해나 아렌트다. 그는 개성과 다양성을 드러내면서 말하는 ‘행위(action)’ 없이, 하나의 목소리로 시키는 일에 열중하는 ‘작업(work)’만 하는 사회에서는 히틀러의 수족이 되어 유대인 학살에 나선 아이히만이 저지른 ‘악의 평범성’이 나온다고 봤다. 그 입장에서 보면, ‘행위’는 의원간 토론이고, ‘작업’은 토론 대신 단일대오로 움직이는 당론적 활동이다.
21대 국회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일하는 국회나 당론에 구속받는 국회를 넘어 ‘토론하는 국회’로 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의원 자율성 회복’과 ‘원내정당화’가 급선무다. 의원총회 중심의 원내정당화가 돼야 초당적 교차 투표는 물론, 의원들과 시민들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연결되는 ‘네트워크 정당’도 가능하다. 의원 자율성 회복을 위해 강제적 당론을 폐지하고 국민경선제 공천을 법제화하는 게 마땅하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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