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8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12인이 일본국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 대해 승소 판결을 내렸다. 13일로 판결 선고가 예정되었던 또 다른 소송은 3월 중 변론을 재개하게 되어 그 귀추가 주목된다. 그 사건에 대해서는 국제인권법 전문가인 백범석 교수, 그리고 저명한 국제법학자인 크리스틴 친킨 교수 등이 의견서를 제출했다.
국민에게는 당연하게 들리는 판결일지 모르겠으나 재판부의 고민은 적지 않았을 것이다. 청구의 정당성을 따지기에 앞서 대한민국 법원이 외국을 피고로 하는 사건에 대해 재판권을 행사할 수 있는가라는 국제법상의 의문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국제관습법으로 자리잡은 국가면제 또는 주권면제의 전통적 법리에 따르면 한 국가는 다른 국가의 재판관할권에 복속되지 않는다. 즉 대한민국 법원은 원칙적으로 일본이든 중국이든 어떤 주권국가도 당사자로 법정에 세워 재판할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주권국가는 평등하기 때문에 다른 국가의 재판을 받을 수 없다는 논리이다.
물론 일본은 판결을 원색적으로 비난했고, 판결을 법원의 모험주의라 비판한 국내 언론도 있다. 만약 법원이 국가면제를 인정하여 소를 각하했다면 국민정서의 압박을 견딜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지만, 재판부가 국민의 눈치를 살펴서 재판했다고 말하면 해당 법관들에 대한 모독이 될 것이다. 설사 국민정서를 반영한 판결이었다 해도 판결이 가지는 의미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국가면제는 절대적 원칙이 아니며 국가면제를 배제하는 국가 행위의 범위가 확대되어야 함을 변설했다는 의미 말이다.
국가면제 법리에 대한 가장 극적인 도전은 이탈리아 사법부에서 나왔다. 2018년 신일철주금 강제징용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에서도 언급된 페리니(Ferrini) 사건에서 이탈리아 대법원은 2차대전 말기 독일에 끌려가 강제노역에 혹사된 피해자가 독일을 제소한 사건에서 이탈리아 법원의 관할권을 인정했다. 인권침해 피해자들의 소송이 잇따랐다. 게다가 이탈리아 사법부는 독일이 그리스에서 범한 집단살상의 피해자와 유족이 독일을 상대로 그리스 법원에서 얻어낸 승소 판결을 승인했다. 이에 독일은 이탈리아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했고, 2012년 국제사법재판소는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않은 이탈리아 법원의 판결이 국제법 위반이라고 선언했다. 이탈리아 의회가 국제사법재판소의 판결에 부합하는 법률을 제정하자 위헌심판이 제청되었고, 2014년 이탈리아 헌법재판소는 반인도적 범죄로 인한 손해의 구제를 위한 소송에 국가면제를 적용하는 것이 위헌적 기본권 침해라고 판결했다.
한 국가를 다른 국가의 법정에 세울 수 없다고 해도 국가의 주권적 행위만을 면제하는 것이지 상업적 행위까지 면제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널리 인정된다. 여기에 더해 주권적 행위라 해도 심각한 인권침해나 반인도적 범죄에 해당하는 경우 피해자의 소송에 따른 재판으로부터 가해국을 면제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음을 이탈리아와 대한민국의 사법부가 선언한 것이다. 국제사법재판소는 물론, 인권 옹호를 본분으로 하는 유럽인권재판소조차도 그러한 경우 국가면제를 배제해야 한다고 보지 않는 것이 국제법의 현실이다. 그러나 법은 고정된 텍스트가 아니며, 국제법은 특히 유동적이다. 국제 법원들이 국가주권을 중심 원리로 삼은 기존의 국제질서를 고수하는 것에 대해 타국을 상대로 한 자국민의 소송에 응답하는 국내 법원의 '도발'이 글로벌 정의의 실현을 재촉하면서 국제법에 파열음을 내는 중대한 양상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위안부 판결이 국민정서에 휘둘린 결과인지는 부차적인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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