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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입력
2021.02.24 00: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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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열린 박근혜 정권 퇴진 촉구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배우한기자

2016년 11월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열린 박근혜 정권 퇴진 촉구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배우한기자


세상을 바꾸는 건 예술가, 발명가, 사회운동가, 혁명가, 기업가, 시인, 소설가, 노동운동가, 스포츠선수, 언론인 같은 이들이다. 기술 문명의 혜택은 물론 문화와 사유의 풍요로움, 탁월한 신체 활동, 놀라운 인간 정신 등은 모두 이들의 발상과 도전, 문제 제기 덕분이었다. 정치는 이들이 자유로운 사회를 만드는 것에 본래의 소명이 있을 뿐, 이들을 대신해 세상을 바꾸려 할 수는 없다. 다양한 시민 집단이 - 노사관계를 통해서든 창작과 창업의 형태로든 아니면 연대와 협력의 사회운동을 통해서든 - 자신들의 세계를 스스로 바꿔나갈 수 있게 하는 것, 정치의 참된 역할은 여기에 있다.

정치는 시민을 위해 있다. 시민이 정치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장 자크 루소의 말로 표현하면, 정치는 '시민적 자유'를 위해 존재한다. 시민적 자유란 - 만인의 공권력이라 할 국가나 정부가 없는 자연상태에서 인간이 자신의 안위를 위해 뭐든지 할 수 있는 '자연적 자유'를 상실하는 대신 얻게 된 - 주권자로서의 자유를 가리킨다. 그 핵심은 '사회계약론' 맨 앞에 나오는 표현인 모두의 '공평한 협정'을 통해 국가를 운영하는 것에 있다. 특정 시민 집단만을 위한 국가도 아니고, 국가가 하고자 하는 일에 일부 특수 집단을 동원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 일반의 공통 의지를 실현하는 국가를 만들고 그 속에서 누구든 자유롭게 발언하고 경쟁하고 협동할 수 있는 공동체를 가꿔가자는 것이다. 이것이 '일반의지'와 '민중 주권' 그리고 '사회계약'이라는 개념을 통해 루소가 말하고자 했던 바다.

최근의 우리 정치사에서 '루소적 모멘트'에 가까운 것이 있다면, 단연 '2016년 촛불집회'다. 잘못된 정부 운영에 항의해 진보는 물론 온건 보수까지 아우르는 시민이 참여했고 여론의 90% 이상이 지지했다는 점에서, 일종의 '사회적 대연정'이라 부를 만한 일을 성취해냈기 때문이다. 그것의 다른 짝은 국회에서 '탄핵 정치 동맹'이 형성된 것이다. 입법부에서 대통령 탄핵에 찬성한 의원의 비율은 3분의 2를 넘었고, 여당에서도 절반 이상의 의원이 함께했다. 자연스럽게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을 청구한 국회의 탄핵소추위원은 새누리당, 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으로 이루어졌다.

필자는 이때의 4당 정치 동맹과 사회적 대연정을 유지하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 그랬더라면 정치의 본래 의미가 살아날 수 있었다고 본다. 구체제 개혁에 대한 폭넓은 '촛불 합의'를 기반으로 실질적이고 실체적인 변화를 모색할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최소한, 큰 변화도 성취하지 못한 채 정치도 사회도 시민도 편을 나눠 분열하고 대립하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 기회는 사라졌다. 그 이전의 친이나 친박처럼 대통령과의 거리감에 의해 이끌리는 정치가 다시 나타났다. '국가의 대개조'와 '역사의 국정화'에 이어 '적폐 청산'과 '촛불혁명',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와 같이, 정치가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일을, 그것도 편협한 지지 기반을 고집해 밀어붙이는 일이 반복되었다. 이 일에 유익함은 없다.

지금 우리 정치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민주당 정부의 남은 1년 동안 정치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인지 돌아봤으면 한다. 적어도 분열된 사회를 물려주는 정치는 아니어야 하지 않겠는가.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국회미래연구원 초빙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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