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폭등 투기꾼 탓으로 돌리던 정부
실세 다주택에 LH 직원 투기의혹까지
국민들 투기꾼 몰지 말고 원점 재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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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한국일보>
집값이 오를 때마다 정부는 투기꾼들에게 화살을 돌렸다. 부동산 정책이 잘못된 게 아니라 나쁜 투기꾼들이 시세를 띄운 것이라며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전임 국토부 장관은 “부동산 시장 과열은 다주택자의 투기가 원인”이라고 칼날을 겨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서 결코 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할 땐 비장함도 느껴졌다. 그는 “투기 억제를 위해 필요한 모든 수단을 강구하겠다”고도 다짐했다.
그러나 ‘투기와의 전쟁’이 신문 제목을 장식하고 새 대책이 발표될 때마다 어찌된 일인지 집값은 오히려 뛰었다. 투기지역과 투기과열지구 지정이 늘면서 사실상 전국이 조정대상지역이 됐는데도 부동산 가격은 떨어지긴커녕 더 솟구쳤다. 대통령까지 나선 ‘투기와의 전쟁’은 왜 효과가 없었던 걸까.
최근 불거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의 투기 의혹은 진실의 일부를 보여준다. 이들은 광명·시흥지구가 3기 신도시로 지정되기 전 100억원에 달하는 논밭을 사들였다. 입주권을 받을 수 있는 크기로 필지를 나누고 묘목을 갖다 심는 건 프로의 수법이다. 신도시 건설과 주택 공급 등을 위해 정부가 국민 혈세 40조원을 출자해 만든 공기업 직원이 이런 일을 했다. 평균 보수가 8,100만원인 9,500여명 직원 중엔 토지 경매 '1타강사'도 있었다. 그럼에도 LH 사장 출신 변창흠 국토부 장관은 이를 옹호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LH 직원들이 논밭을 집중적으로 사들인 시기가 2019년 6월이란 사실은 투기와의 전쟁이 실패한 더 큰 이유를 설명해준다. 청와대 고위 공직자 46명 중 13명이 집을 2채 이상 보유한 것으로 드러난 시기와 겹친다. 청와대 대변인이 재개발 지역의 25억원대 상가 주택을 대출 10억원을 끼고 사 논란이 일던 때다. 이후에도 청와대 수석과 장차관의 다주택 문제는 끊이지 않았다. 윗물이 흐린데 아랫물이 맑을 수 없다. 눈치 9단 LH 직원들이 빈틈을 놓칠 리 없다. 이들은 땅값 상승에 판돈을 걸었다. 부동산 전문가인 이들도 정책을 안 믿은 셈이다.
신도시 전체에 대한 전수조사가 예고된 만큼 한 차례 광풍이 예상된다. 투기와 관련된 이들은 일벌백계하고 엄중 처벌하는 게 마땅하다. 그러나 그런다고 집값이 잡힐지는 의문이다. 정권 실세들과 고위층부터 직보다 집을 지키고, LH 직원들도 정책을 믿지 않고 잇속 챙기기에 바쁜 상황에서 정부가 엉뚱한 국민을 투기꾼으로 몬다면 달라질 게 없다. 신도시뿐 아니라 전국의 개발예정지에서 공직자와 정치인이 투기를 했다는 제보도 이어지고 있다.
‘투기와의 전쟁’은 부동산 정책의 실패를 실체도 불분명한 가상의 적에게 전가하는 정치적 구호에 가깝다. 자고 나면 오르는 집값에 밤잠을 설치던 이들은 내 집을 갖는 게 영원히 불가능해질 것이란 공포에 휩싸였다. 정책 실패가 낳은 이런 절박감에 시중 유동성이 겹치며 집값은 계속 올랐다. 그럼 이들도 투기꾼일까. 집값 상승은 투기꾼보다는 정부의 책임이 더 크다. 정부는 이제 다주택자는 물론 무주택 실수요자가 집을 사는 경우에도 투기란 잣대로 대출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번지수가 틀렸다. 전세대란의 원인도 정부가 제공했다.
진단이 정확해야 처방도 올바를 수 있다. 멀쩡한 풍차를 거인으로 착각해 창을 들고 돌진한 돈키호테처럼 유령과 싸우는 정책으론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는 게 요원하다. 아무리 선의였다 해도 잘못으로 드러나면 인정하고 반성한 뒤 정책을 원점에서 전면 재검토해야 신뢰를 찾을 수 있다. 적어도 보유세를 높였다면 거래세라도 낮춰야 시장이 정상화할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맑지 않은 물인데 앞과 뒤를 다 막으면 물은 썩고 국민들 고통은 더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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