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고용노동부, 기획재정부 등 정부부처에 차별시정과 관련한 권고결정을 내렸지만 이들이 권고에 따르지 않는 ‘불수용사태’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13일 자 인권위 보도자료에 따르면, 중앙행정기관들이 기간제에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공무직 근로자들을 임금, 교육, 복리후생 등 고용조건 전반에 걸쳐 일반 공무원들과 차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동일·유사 업무를 수행하는 공무직 근로자들 간에도 차별하고 있어 인권위가 제도개선을 권고하였지만 고용노동부와 기획재정부가 이를 불수용했다고 한다. 그다음 날인 지난 14일 인권위는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비상대비업무담당자 채용 시 법적 근거 없는 수사경력조회를 통해 불기소처분 경력을 조회하고, 이를 이유로 응시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이 고용상 차별이라 지적하면서 개선을 권고하였으나 이 또한 행정안전부 장관이 불수용했다고 밝혔다.
이뿐 아니다. 바로 다음 날인 15일에는 인권위가 전력산업의 외주화로 인한 하청노동자 산업재해, 고용불안과 불합리한 임금격차, 필수 장비 지급 차별 등의 해소를 위해 산업통상자원부와 기획재정부에 직접 고용을 권고했지만 이들 정부부처 역시 이를 불수용했다고 한다.
인권위는 국가인권위원회법 제44조에 따라 차별행위가 존재하는 국가기관에 차별행위의 중지, 원상회복, 손해배상, 제도개선 등을 권고할 수 있다. 비록 강제성이 없는 권고이지만 국가기관에 의한 차별은 사적 영역에서의 차별과는 차원이 다르다. 사적 영역은 기본적으로는 사적 자치가 보장되고 차등 대우할 자유를 포함하여 사인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할 영역인 반면 국가기관 내지 공적 영역에서의 차별은 헌법 제11조가 규정하는 평등권의 침해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부처들이 인권위 권고조치를 거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각에서는 인권위의 위상이나 권한이 약해서라고 하지만 차별금지라는 문제가 그만큼 복잡·미묘하기 때문이라 보아야 한다. 정부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정책으로 4만4,000명까지 늘어난 중앙행정기관 무기계약직 근로자들을 일반 공무원들과 동일하게 처우하는 것이 이상적일 수는 있지만 막대한 예산이 필요할 뿐 아니라 전혀 다른 선발절차를 통해 채용된 공무원들과의 형평성 문제도 있다. 또 비상대비업무담당자와 같은 특수인력의 채용에 있어서 엄격한 검증과정을 거치는 것이 과연 고용차별, 직업선택의 자유 침해인지도 논란이 될 수 있다. 헌법상 평등권조항의 직접 적용을 받는 국가기관들이 인권위의 차별시정권고에 불응하는 작금의 상황은 성별, 인종 등 선천적 신분뿐 아니라 전과, 병력, 학력, 고용형태 등 후천적 사유까지 차별금지사유로 규정하는 한 현행 국가인권위원회법의 이상과 현실 간의 괴리를 드러낸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지난달 이상민 의원이 대표 발의한 ‘평등에 관한 법률안’은 헌법 제11조를 근거로 사적 영역을 포함한 광범위한 영역에서의 차별금지를 의무화하고 차별에 대한 다양한 구제수단을 규정하고 있다. 이 법이 국가인권위원회법과 다른 것은 강제성이 없는 인권위의 권고결정을 넘어서서 법원을 통한 강제성 있는 구제조치와 최대한 5배에 이르는 손해배상을 가능케 한다는 점이다. 국가기관도 지키기 힘든 포괄적 차별금지를 민간영역에까지 강제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일까 의구심이 든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