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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이 섬뜩하게 느껴질 때

입력
2021.12.30 00: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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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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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소위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신입생 중 55%가 소득분위 9~10분위 고소득 가구에 속해있다는 통계가 나왔다. 미국의 법학자 마이클 샌델의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밝힌 바, '정상에 오르는 사람은 스스로 잘나서 그런 것'이라는 능력주의적 오만에 대한 문제제기가 들어맞는 상황이다. 공정은 줄곧 '기회균등'이라는 수사와 함께 오는데, 규칙을 지키면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누구나 재능이 이끄는 만큼 높이 올라갈 수 있다'라는 능력주의가 승자들을 오만으로, 패자들은 굴욕과 분노로 몰아간다. 사회문화적인 배경과 상관없이 개인의 능력이 존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공정하다는 착각'은 그렇지 않다라고 명확히 대답하고 있으며, 공정하다는 착각이 그간 엘리트층의 능력주의적 오만을 정당화해왔고, 양극화시대를 살아가는 배제된 사람들의 분노가 심각한 사회분열을 일으키고 있음을 밝힌다.

우리 사회에서 오늘날 청년세대가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공정' 담론은 오히려 민주주의와 거리가 멀다. 청년세대는 어린 시절부터 높은 교육열로 무장한 부모세대의 뜻에 따라 입시 준비에 매진해오면서, '노력'은 도덕이 되고,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는 것이 '정의'와 '공정'이 되었다. 이러한 정의감은 개인의 노력에 대한 엄정한 성과와 자격에 따른 보상을 요구한다. 청년들은 노력도 모자라 '노오력'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대한 비판적인 질문을 던지는 대신에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처절하게 노력하고, 이를 위한 절차적인 공정성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여기서 '공정'은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여성이나 지방대 출신에 대한 고용할당제 같은 조치들에 반발하는 근거가 되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를 드러내는 원천이 된다. 여기서 '공정'은 모든 사람은 자격과 상관없이 존엄하다는 민주적 권리 관념의 기초를 흔들고 있고, 오히려 절차만 공정하다면 결과의 불평등은 클수록 좋다는 믿음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러한 공정은 능력주의를 강화하고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많은 사람들이 능력주의 신화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패배하면서 사회적 인정과 존중감을 빼앗겼으며, 이는 분노로 바뀌어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오늘날 정의는 분배와 인정을 모두 요구하고 있다. 배제되지 않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분배보다 더 중요한 사회로 세상은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 양자를 어떻게 결합할 것인가가 정치의 중요한 과제가 되는 이유다. 분배와 달리 인정은 절차적 정의를 넘어선, 자기 실현과 좋은 삶이라는 실체적 목표에 대한 것이다. 청년들은 기성 세대가 만들어놓은 체제 속에 무한경쟁을 당연시하고, 형식적 공정성과 같은 지엽적인 원칙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정치적 각성을 통해 이와 같은 현실을 구조적으로 바꾸어내야 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서 일의 존엄성을 회복하고 사회적 연대를 통해 민주주의를 회복해야 한다.

그 첫걸음으로 거짓 공정에서 벗어나 진정한 공정의 의미를 찾아와야 한다. 불평등을 강화하는 공정이 아닌, 평등을 지향하는 공정으로 공정의 의미를 제대로 세워야 한다. 능력이라는 말로 옹호되어 온, 그러나 분노를 퍼뜨리고 정치에 해를 끼치며 사회를 갈라놓은 부와 명망의 불평등에 이의를 제기하여야 한다. 모두가 거짓 공정에서 벗어나 능력의 시대가 풀어버린 사회적 연대의 끈을 다시 매는 새해가 되면 좋겠다.


강민정 한림대 글로벌협력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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