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우유팩이, 그다음에는 주먹이 날아왔습니다. 피하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그 편이 예의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함께 있던 동기와 후배들은 얼어붙었습니다. 주먹을 두어 차례 날린 교수님은 그제야 분이 좀 풀렸는지 휙 사라졌습니다. 저는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다가, 그 길로 휴학계를 내고 입대했습니다. 강의실에서 교수님을 마주칠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삼십 년도 넘은, 학교가 늘 최루탄으로 엉망이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그날 저는 과학생회장으로 수업 거부를 주도하던 참이었습니다. 미리 말씀이야 드렸지만, 막상 자신의 수업에 아무도 나타나지 않자 교수님은 분노했고, 대자보를 쓰고 있던 저를 기어이 찾아냈습니다. 감히 내 수업을 거부하다니 이 빨갱이 녀석! 대략 그렇게 말씀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날이었습니다. 교수라는 직업에 처음으로 관심이 생긴 것은. 학생들을 이해하는, 20대의 분노와 고통에 조금이라도 공감하는, 그리고 젊은 세대를 편들어주는 선생이 되면 좋겠다는 치기 어린 생각이 시작이었습니다. 어쩌다 보니 저는 어쭙잖은 교수가 되었고, 얼굴에 주먹을 날리던 교수님의 나이가 되어버렸습니다. 저는 20대의 편일까요?
제 또래 사람들 가운데에는 자신이 젊을 때의 생각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아직도 민주화라는 대의를 믿으며, 젊은 시절과 같은 수준 높은 문화를 즐긴다는 것을 드러내려고 합니다. 선배세대가 나이 들면서 보수화되고, 청년문화에서 트로트로 전향하는 것을 폄하하기도 합니다. 정보기술에도 제법 익숙한 편입니다. 늙음을 거부하는 세대인 셈입니다. 아직도 자신의 20대로부터 정신적으로 그리 멀지 않다는 은근한 자부심을 공유합니다. 저 역시 그런 생각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학생들, 그리고 젊은 창업자들을 만나면서 제 환상은 부서졌습니다. 제가 편들고 있는 것이 지금의 20대가 아니라, '제 젊은 날의 20대'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니, 편들기는커녕 우리는 그들을 잘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신입사원들이 자신의 업무만큼이나 코인에 진심인 이유를, 우리가 통과의례 정도로 여기던 군복무를 지금의 청춘들이 '이유 없는 징벌'이라고 여기는 이유를, 사회적인 이슈에서 우리보다 훨씬 진보적인 태도를 가진 학생들이 보수정당에 투표하려고 하는 이유를, 저는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저는 또 생각합니다. 꼭 잘 이해해야 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할 일은 굳이 공감하거나 이해하지 못해도, 다음 세대를 그냥 믿어보는 것일 겁니다. 언제나 역사는 젊은 세대가 이끌어왔고, 좋든 싫든 우리의 미래도 그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자신이 잘 이해하는 만큼의 젊음이나, 자신이 젊었던 시절이 아니라, 그냥 지금 청춘의 편에 서는 것. 그리고 그게 바로 삼십 년 전 제가 원했던 선배의 모습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자각 속에 저는 오랫동안 동어반복에 불과했던 이 지면에서의 발언을 멈춥니다. 더 젊고 뚜렷한 목소리로 이 지면이 채워지길 기대합니다. 오랜 애독자로서, 한국일보의 필자였던 것은 정말 영광스러운 기회였습니다. 한국일보는 필자 입장에서도 정말 멋진 매체라는 것도 느꼈습니다. 그동안 읽어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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