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KBS와 한국리서치가 대선 후보들의 현금 지원 공약에 대하여 청년들에게 의견을 물은 결과, 찬성(41.1%)보다 반대(56.5%)가 많았다. 그 이유는 효과가 크지 않아서(39.4%), 정부 재정 부담이 커서(37.4%), 다른 세대와 형평성에 어긋나서(18.5%)라고 한다. 이 조사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혼란스러운 가운데 '현금 지원'이라는 용어가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금 지원'은 정치가 제도적이고 구조적인 접근을 하기보다는 현금을 뿌리며 유권자의 마음을 사려 한다는 느낌을 준다.
그렇다면 기본소득은 현금 지원인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표면적으로 현금을 지급한다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맞으며, 본질적으로 기본소득이 포퓰리즘 정책으로 싸잡아 인식된다는 점에서 틀리다.
세계가치조사(World Value Survey)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삶에 있어 노동이 '매우 중요하다'고 응답한 사람이 60%이며, 이는 영미권과 유럽국가보다 두 배가 넘는 수준이다. 일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마라! 우리 사회에 굳건히 자리 잡은 이와 같은 믿음은, 종종 실업이 개인의 부지런함의 문제로 치환되거나, 현금 지원에 대한 도덕적 해이를 문제 삼는 시각을 형성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덜 부지런해서 일을 안 하고 있나? 현금 지원이 일어나면 사람들이 일을 안 하게 될까?
기본소득은 분배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으로서, 국가가 모든 사람에게 조건 없이 정기적으로 소득을 지급하자는 아이디어로 이미 세계 곳곳에서 실험 중이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창업 액셀러레이터인 와이 컴비네이터가 2016년부터 실험해 왔고, 유럽에서는 관료화되고 복잡해진 복지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제안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서울시, 성남시, 경기도에서 몇 년째 실험 중이던 것이 코로나19라는 재난 상황을 거치며 갑작스럽게 전 국민이 재난기본소득을 경험하기도 하였다.
기본소득은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변화로 인해 구조적으로 발생하는 고용 위기에 대처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 최근 급속하게 늘어나는 플랫폼 노동처럼 고정된 일터와 수입이 보장되지 않는 노동을 받쳐주는 제도적 장치로서, 불안정한 노동의 시대를 살아내는 사람들의 삶을 떠받쳐줄 가장 확실한 수단이다. 탈일자리 시대로의 전환기에 기본소득은 청년들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설계하고 창직과 창업을 다방면으로 시도하는 과정에서 진정한 선택의 자유를 누리도록 할 수 있다.
'기본소득'이 '현금 지원'이라고 불리며 포퓰리즘이라는 프레임 속에 갇혀 정쟁의 대상이 되면서, 이를 표방해온 유력 대선후보조차 자신의 1호 공약이 아니라며 슬그머니 내려놓는 모양이다. 탈일자리 시대로의 전환에 대응하는 복지시스템을 재설계하고, 날로 심화하는 불평등을 해결해나가는 방안으로 제시된 기본소득은, 굳건한 노동지상주의가 지배하는 우리 사회에서, 치열한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전환의 시대를 준비해나가는 건강한 논쟁이며, 그 과정에서 재원을 얼마나,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기존 복지시스템을 어떻게 재설계할 것인지가 구체화될 수 있을 것이다. 기다리고 기다려도 여전히 지엽적이고 지리멸렬한 네거티브로 점철된 국면을 끝내고, 전환의 시기를 버텨낼 안전망, 기본소득을 어떻게 도입할 것인지에 대한 치열한 논쟁을 이번 대선에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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