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은 정월 대보름이었다. 한 해의 첫 보름이자 보름달이 뜨는 날로, 오곡밥과 묵은 나물, 부럼을 먹으며 가정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특별한 날이다. 특히 고사리를 비롯한 9가지의 묵은 나물을 먹으며 겨우내 부족했던 식이섬유와 무기질, 비타민 등을 보충할 수 있는데, 이러한 풍습은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조선 시대의 풍속을 정리해놓은 '동국세시기'에는 묵은 나물을 먹으면 여름에 더위를 타지 않는다고 기록되어 있고, 1800년대 쓰인 '가정살림에 관한 규합총서' 등에도 나물에 대한 다양한 내용이 실려 있다. 이처럼 나물은 옛적부터 한국인의 밥상에 빠지지 않는 반찬 중 하나로 꾸준히 사랑 받아 왔다.
지난해 말, 전국 최초로 나물 명인이 탄생했다. ‘하늘농가’의 고화순 대표가 2021년 대한민국 식품명인(‘고사리나물’ 제조 명인)으로 지정된 것이다. 고 대표는 23년 나물류 제조경력 보유자로서, 고증을 근거로 한 전통 고사리나물 복원 등을 인정받았다.
대한민국 식품명인 제도는 농림축산식품부가 식품의 제조·과정·조리 분야의 우수한 기능 보유자를 발굴 및 육성하여 우리 고유의 전통 식문화를 보전하기 위해 시행하고 있는 제도다. 1994년부터 시작된 이 제도는 20년 이상 한 분야에서 전통방식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고 실현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여 명인으로 지정한다. 현재는 91명이 명인으로 등록되어 있다.
고 대표는 명인 지정에 필요한 원형 복원을 위해 외할머니와 어머니께 물려받은 방법으로, 1450년 편찬된 '산가요록'을 비롯한 고전 조리서 내용에 따라 고사리나물을 복원했다. 또한 정통성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3대 이상의 전승 기술을 10년 이상 전수받았다는 증빙이 필요했는데, 돌아가신 외할머니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서 당시 외할머니와 함께 활동하셨던 분을 수소문하여 마침내 정통성을 입증했다. 많은 분이 돌아가시거나 글을 몰라 그 과정이 순탄치 않았지만, 그녀에게는 아주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실제로 고 대표의 외할머니와 어머니는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부터 고사리를 팔아 왔다. 그러다 판매처가 없어 힘들어하시는 어머니를 도와드리고자 시작한 학교 급식 납품이 고사리 상품화까지 이어진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그녀는 외할머니와 어머니로부터 고사리를 뜯고 삶고 말리는 법, 묵은 냄새를 제거하고 좋은 식감을 내는 법과 깊은 맛을 살리는 법 등의 전수받은 비법을 가지고 다양한 조리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주위의 여러 식품 전문가와 명인들을 보며, 식품명인의 꿈을 키웠다. 특히 예부터 일상에서 즐겨 먹었던 나물의 보존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외할머니와 어머니를 이어 3대 고사리 계승자가 된 고 대표는 기성세대에는 옛 맛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젊은 세대에는 다양한 나물의 참맛을 알리고자 노력하고 있다. 나물 명인으로서 고 대표의 최종 꿈은 나물의 세계화를 통해 한국의 나물 문화가 유네스코 무형문화재에 등재되는 것이다. 4대손인 차녀 박미소 양도 영양사와 한식조리사 자격을 취득하며 나물 명인 어머니와 함께 꿈을 꾸고 있다.
고 대표의 바람처럼 우리의 전통음식인 나물이 우리만의 먹거리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한국의 식문화로 자리매김하길 소망한다. 작은 밥상의 가녀린 나물 향이 세계로 널리 퍼지는 그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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