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었다. 1908년 미국의 여성 섬유노동자들이 열악한 작업장에서 화재로 숨진 여성 노동자를 기리며 대규모 시위를 벌인 것에서 유래했다. 당시 미국 여성 노동자들은 최악의 노동 환경에서 하루 12~14시간씩 일해야 했음에도 참정권과 노조결성의 자유 등 기본적인 권리도 보장받지 못했다. 마침내 분노가 폭발한 여성 노동자 1만5,000명이 뉴욕 루트커스 광장에 모여 생존권(빵)과 참정권 보장(장미)을 요구하며 궐기했다.
이날의 시위는 이후 남녀 차별 철폐와 여성 지위 향상을 위한 사회 운동을 촉발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에 유엔은 1977년에 이르러 3월 8일을 세계 여성의 날로 공식화하였다. 그때부터 3월 8일은 여성들이 지금까지 힘들게 쟁취한 여성 권익을 축하하고 기념하는 날이 됐다. 동시에 여성이 여전히 온전하게 평등한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성차별적인 현실을 환기시키는 날이기도 하다.
올해 한국에서 여성의 날은 특별했다. 불과 하루 뒤가 제20대 대통령 투표일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번 대선은 역대 어느 선거보다 '여성 배제'가 노골적이었다. 최근 몇 년 사이 한국사회는 여성들의 성평등 요구에 대한 남성들의 반동이 거셌고, 흔히 '젠더 갈등'으로 퉁치고 마는 성별 적대의식이 매우 강하게 돌출됐다.
누군가를 적대한다는 것은 현실정치에 관여해야 할 확고한 이유가 된다.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으로 똘똘 뭉친 '이대남'이 대선주자들의 눈에 선거결과를 좌우할 결속력 강한 유권자로 인식된 것도 무리가 아니다.
여야 할 것 없이 2030 남성이 선거 결과를 좌우할 '캐스팅보터'로 분석되자 여성혐오에 가까운 정책들이 공약으로 쏟아졌다. 애초에 여성 문제에 보수적인 국민의힘은 '여성가족부 폐지'를 '청년'공약이랍시고 내놓으며 '이대남' 비위 맞추기에 급급했다. 친여성적 정당임을 내세웠던 민주당도 남초 커뮤니티를 의식해 친여성적 미디어 출연 계획을 번복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연출했다. 양당 대선 후보들은 남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집단화한 일부 2030 남성 목소리에 주목했고, 이들을 겨냥한 선거운동 양상은 대선 막바지까지 이어졌다. 여성의 날에 '여성가족부 폐지' 구호가 다시 호명됐던 광경을 생각해보라.
이번 선거에서 여성들은 여성혐오 대선을 치러야만 했다. 여성들은 모욕당했다. 모든 공약에서 여성 의제의 논의 수준은 퇴행했고, 여성 유권자의 존재는 지워졌다. 왜 이럴까. 경향신문 데이터 저널리즘 팀이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17대부터 19대까지 최근 3차례 대선의 20대 투표율은 여성이 약간 높다. '여성은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통념이 적어도 20대에는 틀린 말이다. 그럼에도 20대 남성만이 캐스팅보터로 인식되고 20대 여성이 배제됐던 이유는 왜일까. 아마 제3지대 후보 지지율이 높고 표의 응집력이 약하다고 인식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실제 결과는 달랐다. 20대 여성의 막판 응집력은 강력했다. 선거기간 내내 30%대에 불과하던 20대 여성의 여당후보 지지율이 60.2%(JTBC 출구조사), 58%(지상파 3사 출구조사)까지 치솟았다. 20대 여성 표심은 선거 막판 5일 동안 그 어떤 세대나 성별보다 활성화되어 응집했다. 성차별적 현실에 진지한 여성 유권자일수록 진정 여성에게 호의적인 거대 정당이 없는 정치 현실에서 이번 대선의 선택은 고민이 깊었을 것이다. 성차별적 현실에 대한 절박함과 진지함을 토대로 더 많은 수가 참여하고, 더 강하게 결속하고, 더 소리 높여 주장한다면 다음 선거에서 여성들은 확실한 캐스팅보터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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