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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반의 오류'에 빠진 정치가들

입력
2022.04.05 00: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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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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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반의 오류'(nirvana fallacy)라는 표현이 있다. 열반(涅槃)은 완벽한 상태를 말하는데 오류가 있다니 모순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지만, 이는 열반 자체가 잘못됐다는 말이 아니고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상을 좇느라 실현가능하고 합리적 대안을 놓치는 오류를 말한다. 미국의 경제학자 뎀세츠(H. Demsetz) 교수가 처음 사용한 표현으로 불가능한 완벽을 추구하느라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경우를 빗댄 것이다.

뎀세츠 교수는 열반의 오류의 대표적인 예로 시장기구와 정부규제 사이의 선택을 들었다. 시장이 개개인들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통해서 효율적 자원배분과 역동적 경제성장을 이끈다는 것은 이미 잘 정립된 이론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시장은 이론처럼 늘 완벽하게 작동하지는 않는다. 시장이 독과점화하거나 공공재나 외부성 문제가 있을 경우에는 효율적인 결과에 이르지 못하는 소위 시장실패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에는 시장실패를 보완하기 위해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다면 여러 가지로 불완전한 시장 대신에 아예 처음부터 정부에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 낫지 않을까? 영리만을 추구하는 이기적 자본가들에게 경제를 맡기는 것보다는 사명감에 찬 공직자들이 모든 시장을 엄격히 규제하고 국가 기간산업은 공기업을 통해 직접 운영하게 하면 모든 문제들이 완벽하게 해결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야말로 전형적인 열반의 오류이다. 정부는 전지전능하지 않을 뿐 아니라 동기가 100% 순수하지도 않은 또 하나의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공직자들은 영리를 추구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자신의 출세와 안위를 위해서 행동한다. 본인을 희생해 가면서 오로지 사회에 봉사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환상이다. 오히려 영리추구라는 강력한 유인이 없기 때문에 소비자나 최신 기술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신속히 시장에 반영하려는 동력이 부족하고 개혁에 대해서 소극적이다.

여기에 정치가 개입하기 시작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 정상적 시장기능을 억제하고 왜곡된 결과를 강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문제의 근본 원인들을 그대로 두고 가격만 잡아보겠다고 소위 핀셋규제를 도입하면서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킨다거나, 전기요금 인상을 두고 정치권의 눈치를 보며 갈팡질팡하는 사이에 우리나라 전력산업이 총체적으로 부실해지는 현실들은 정부의 불완전성을 잘 보여준다. 열반은커녕 번뇌로 가득하다.

완벽한 제도에 대한 유혹은 열반에 대한 유혹만큼 강렬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보다는 어딘가에 해법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정치인들은 선거철만 되면 자신들이 시장경제의 문제점을 모두 해결하는 비결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열반에 대한 환상을 부추긴다.

진정한 종교는 모든 사람에게 현실을 버리고 열반의 길로 들어서라고 하지 않는다. 자기만 따르면 이승에서 천국을 맛보게 해주겠다고 하지도 않는다. 다만 사람들이 현실에서 당면하는 고난들을 영적으로 극복하고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게 인도해 준다. 정부가 시장을 대신해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서기보다는 시장의 부족한 점들을 보완하면서 심각한 실패에 이르지 않게 감시하는 역할에 충실하는 것이 열반의 오류를 피하는 길이다.


김영산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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