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에 몇 명 보냈냐는 질문은 이제 그만해 달라는 편지를 학부모에게 보낸 중동고 이명학 교장의 용기 있는 외침이 화제다. 학교는 대입 사설학원이 아니다. 그래서 대학 입학 성과가 고등학교 교육의 목적이 결코 될 수 없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이 잘하는 것으로 사회에 기여하는, 건강하고 책임감 있는 시민을 키워내는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았기에 이 교장의 편지에 대한 사회적 울림이 매우 컸다.
똑같은 이야기가 대학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우리 대학은 목적성을 상실한 무한 경쟁의 틀 속에 스스로를 가두어 놓고 있다. 해마다 이즈음 언론이 발표하는 정시입학 합격선 점수가 대학과 학과 순위를 결정한다. 따지고 보면 입학성적 순위는 대학이 노력한 성과도 아니고, 평판 시장에서 만든 숫자일 뿐인데 말이다. 대학을 경험하고 대학에서 학습한 인재들이 사회에 어떤 영향력을 끼쳤는가 하는 점이 평가되어야 하지만, 이 점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국내외 언론사와 평가기관이 주관하는 대학평가도 마찬가지다. 연구 논문의 피인용 수보다 그 연구가 사회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가 더 중요한데, 여기에는 관심이 적다. 대학마다 나름의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강의실과 연구실에서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에 대해 치열한 아이디어와 실행의 경쟁을 해야 하는데, 획일적 잣대의 순위 게임이 이를 무력화한다.
교육부의 대학혁신 사업도 사정은 같다. 대학혁신 사업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 개별 대학의 특수성은 없고, 주어진 평가지표 달성을 입증하는 정답지만 있다. 대학들은 전담부서를 따로 두고 소모적인 평가 대비 업무에 소중한 에너지를 써야 한다. 오죽하면 교육부가 손을 떼어야 대학이 산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이제 대학 스스로 내부 혁신을 고민해야 한다. 특히 코로나 이후의 새로운 교육과 연구, 그리고 이를 통해 어떻게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갈 것인가를 진지하게 성찰해야 한다.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 기술, 경제, 사회에 대한 새로운 가치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필요하면 재설정해야 한다. 그 가치를 중심으로 진취적이고 미래지향적 경쟁의 판을 다시 디자인해야 한다.
최근 미국 하버드대학은 코로나 이후 최적의 강의실을 다시 상상하고, 양질의 지식 콘텐츠를 만들고, 하버드 담장 넘어 사회 공동체로 학습 기회를 확장하는 방향의 혁신 보고서를 선보였다.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대학 중 하나인 하버드가 미래 교육의 가치와 목적을 재설정하는 데 진심인 것은 대학이 사회에서 감당해야 하는 소중한 책무성 때문이다.
김도연 전 포스텍 총장은 최근 한 포럼에서 우리 대학이 앞으로도 계속해야 할 일, 이제는 중단해야 할 일, 그리고 새롭게 시작해야 할 일을 진정성 있게 고민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스스로 변하지 않는 대학에는 미래가 없다고도 했다. 삼성전자에 몇 명 들어갔는지 묻지 말고, 사회 혁신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물으라는 정도의 가열찬 혁신 의지가 대학에도 요구된다.
대학은 그냥 보통의 학교가 아니다. 국가 교육제도 아래 있는 학교의 한계를 넘어야 한다. 그래서 규제 탓만 해도 안 되고, 목적성을 상실한 경쟁 순위에만 안주해도 안 된다. 대학 스스로가 자유와 책임, 다양성과 포용의 정신으로, 인류와 사회의 미래를 밝히는 지식과 지혜의 보고이자 전수자로서의 사명감으로 사회를 견인해야 한다. 그 과정이 조금 불편하고 힘들어도 이겨내야 한다.
대학의 비전과 대학인의 결기에 우리의 미래가 있다. 역사 속에서 대학은 국가와 사회의 미래를 만들어 왔다. 그리고 오늘의 우리 대학의 혁신 수준이 내일의 국가 수준을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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