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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정책의 형용모순

입력
2022.04.19 00: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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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세 통일부 장관 후보자가 13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브리핑룸에서 열린 2차 내각 발표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권영세 통일부 장관 후보자가 13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브리핑룸에서 열린 2차 내각 발표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권영세 통일부 장관 후보자는 '형용모순'이라는 말부터 꺼내들었다. 대북정책의 원칙과 실용을 언급하면서였다. 물론 외교에서도 안보에서도 유사한 상황은 존재한다. 원칙과 타협, 가치와 이익은 외교현장에서 충돌하며, 교전과 협상의 모순적 공존은 전장(戰場)에서는 일상이다. 그러나 대북정책에서 원칙과 실용의 부조화가 유독 두드러지는 이유는 한국 정치에서 대북정책이 차지하는 위상과도 무관치 않다.

과거 독재정권은 대통령의 권위적 통치를 정당화하는 명분으로 남북 간 대치와 갈등을 활용했다. 북한발 위협지수가 높을수록 대통령의 지지도도 올라갔다. 민주화와 냉전 종식 이후에는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졌다. 평화가 표였다. "남북대화 하나만 성공시키면 다 깽판 쳐도 괜찮다"고 호언했던 대통령 후보까지 있었다.

대통령 선거를 치를 때마다 대북정책 공약에는 여전히 성역이 남아 있다. 자신이 소속한 정당의 과거 대북정책에 대해 한계, 성찰, 쇄신과 같은 단어를 입에 올린 후보를 나는 보지 못했다. 선거 막판 패색이 짙은 후보의 큰절과 읍소가 '국룰'이 된 한국 대선에서는 기이한 현상이다. 부동산 정책과 청년 정책, 일자리 정책, 배우자 문제까지 가리지 않고 사과를 묘약처럼 쓰는 정치인들도 대북정책에서만큼은 무오류성을 신봉한다. 그래서 앞으로도 믿을 것이다. 대북정책의 한계가 있었다면 상대편이 정권을 잡았을 때부터 배태된 것이고, 성과가 미진했다면 우리편이 너무 빨리 정권을 내주었기 때문이라고.

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은 미완성이다. 설계도 어디에 그린과 홀컵을 그려 넣었고 어느 구석에 벙커와 해저드가 있는지까지 알 도리는 없다. 그러나 한국 대통령 5명과 미국 대통령 5명이 30년 동안 해결하지 못한 북핵문제를 어퍼컷 한 방으로 해결할 수 없는 건 자명하다. 스윙할 때에는 머리 들지 않고 어깨에 힘 빼는 것이 현명해 보인다. 원칙을 벗어난 말과 행동, 실용적 정신에 어긋나는 조치를 우선적으로 바로잡으면서 미끄러지듯 출발하는 것이다.

북한의 막말 담화와 공무원 피살에 대한 통일부의 대응은 얼마나 원칙에 기반하고 있는가. 국민들은 분노하는데 물에 물 탄 듯한 입장만 되풀이하는 방식은 알아서 접을 때가 되었다. "북한의 의도를 예단하지 않고, 동향을 면밀하게 주시하면서, 모든 가능성에 대비한다"는, 속터지는 브리핑 말이다. 비핵화의 단계적 조치가 취해질 때까지 대북 제재를 유지한다는 한미 양국과 유엔의 기본 입장은 존중하면서도, 제재 우회로를 찾는 데 정책자원을 집중한다면 이 또한 원칙에 부합하는 행동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의 판문점선언과 9·19군사합의를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것도 실용적 접근과는 거리가 멀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직후 노태우 정부의 남북기본합의서를 들고 나왔다. 6·15와 10·4 남북공동선언을 부인하지 않았으니 '신의 한 수'라고 생각했겠지만 무엇을 얻었는지는 되돌아봐야 한다. 남북합의는 포괄적으로 존중하되 이행 조건과 방식, 속도에 대해서는 남북대화를 통해 협의해 나가겠다는 태도가 실용에 부합하는 길이다.

남북관계는 설계도면이나 공약대로 이행되지 않는다. 남북연락사무소 폭파, 하노이 노딜, 목함지뢰 사건, 천안함과 연평도, 금강산 관광객 피살. 이 중 대선 승리 당시 예상했던 사건은 단 하나도 없다. 하나하나의 사건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무엇이 원칙인지 어디까지가 실용인지가 분명해질 것이다.


성기영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외교전략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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