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험한 산을 넘고 깊은 계곡과 강을 건너는 지난한 여정이다. 당장은 야속해 보이는 험난한 지형지물이 때에 따라서는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목적지에 이르는 길잡이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심은 강물 아래 암초를 보지 못하고 질주하는 뱃길에 또 한 번 강력한 제동을 걸었다. 선거에 패배한 야당은 물론, 여당과 대통령도 같은 교훈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역사와 자연의 섭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일방향 폭주를 한다면 바로 또 다른 큰 암초를 맞을 것이다.
다음 세대도 흐르는 강물에서 교훈을 얻었으면 한다. 수면 아래 눈에 보이지 않는 지형을 냉정히 읽어내는 혜안이 필요하다. 모든 강은 특수한 물의 흐름 속도와 지형 특성을 갖는 자연 현상이기에 일반화해서 설명하기 힘들다. 흐름이 순탄한 강은 없다. 그러나 거꾸로 흐르는 강도 없다. 역사의 진보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으로 조금씩 나가야 한다. 어려운 뱃길을 무서워하면 한 치도 나갈 수 없지만, 담대히 도전하면 결국에는 큰 바다에 이른다.
어려운 뱃길을 떠날 때 목적지가 같은 친구들과 함께 가면 서로 의지가 되어서 좋다. 그러나 마음이 맞는 친구들만 골라서 같이 가는 뱃길은 말리고 싶다. 가능하면 나와 달라서 내 단점을 보완해 줄 수 있는 친구를 선택할 것을 권유한다. 차이는 서로 인정하되 차별은 없는 공동체에서 협력과 공존으로 더욱 쾌적한 뱃길을 만드는 방법을 체득해야 한다.
개별 공동체가 추구하는 목적의식 자체가 잘못된 것은 전혀 아니다. 그러나 공동체의 목표가 집단이기주의를 넘어 집단의 탐심이 된다면 큰 문제다. 바다에 먼저 이르기 위해 다른 공동체의 뱃길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그 상식이 매우 자주 무너진다. 서울시장 출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20대 남성의 75%가 오세훈 후보를, 여성의 67%가 송영길 후보를 지지했다. 서로에게 등을 돌리는 이대녀 대 이대남의 반목과 갈등의 극단이 표심으로 드러났다.
양성 평등을 추구하는 사회운동은 여성과 남성 간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아 조화로운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선한 의도에서 시작됐다. 같은 배에 올라 각자의 특기와 장점을 존중하고 부족한 점을 보완하며 함께 가자는 것이지, 편을 나눠 서로 다른 배에 올라, 서로를 경계하며 위험한 경쟁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중고등학교의 양성평등 교육이 이념의 아집에 사로잡혀 여성과 남성을 서로 다른 배에 태워 서로에 대한 과도한 경계심, 우월감과 피해의식, 그리고 그 결과로 분노의 질주를 하고 있으니 섬뜩하다. 여야 정치인들이 이런 틈새를 하이에나처럼 파고들어 이념화하고, 대중선거전 여론몰이와 득표를 위해 교활하게 활용하고 있음도 개탄스럽다.
어떻게 극복할까. 먼저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바로잡는 토목공사가 필요하다. 이는 국가의 교육, 복지, 노동정책과 제도의 배려로 해결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평평하게 만들어진 운동장에서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며, 공정하게 경쟁하는 방법을 체화하는 시민공동체 교육이다. 이를 위해 각급 학교와 대학에서는 이념을 넘어선 자유의 정신, 다양성과 인권 정신의 교육과 토론이 이뤄져야 한다.
다음 세대를 태운 각양각색의 배들이 각자의 확성기만 크게 틀고 귀를 닫은 채 질주한다면 모두의 안전에 적색등이 켜진다. 새로 선출된 교육감들은 눈앞의 학력 향상보다 실상 더 중요한 사회 공동선(善) 가치의 체감교육 정책을 먼저 고민해야 한다. 이대녀 대 이대남의 극심한 갈등의 지형지물을 슬기롭게 극복해 민주화 이후 성숙한 민주주의로의 뱃길을 시원하게 열어주는 전기를 만들어야 우리 사회 미래에 희망이 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