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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계 미국인 수학자인 허준이(39) 미 프린스턴대 수학과 교수가 5일 세계 3대 수학상으로 꼽히는 필즈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4년마다 40세 미만의 수학자만 상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노벨상 수상에 버금간다는 평가다.
□ 최근 한국 수학계의 성취는 돌올하다. 지난 2월 국제수학연맹(IMU)이 한국의 수학등급을 ‘수학선진국 클럽’에 해당하는, 최고등급 5등급으로 상향한 일이 상징적이다.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도 한국 학생들은 여전히 최상위급 성적표를 받아오고 있다. 겸양의 발언이겠지만, 허 교수도 수상 직후 “제가 딱히 도드라졌다기보다는 30, 40대 수학자들이 실력이 좋다”며 자신의 수상이 한국 수학계의 축적된 역량의 산물이라고 언급했다.
□ 하지만 화려한 성취 이면에는 그림자도 짙다. 일선 학교에서의 파행적 수학교육으로 수학을 포기한 학생들, 이른바 수포자들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7년 9%였던 수학과목의 기초학력 미달 고교생은 코로나 사태 이후인 지난해 14%로 늘었다. 수학과목이 수학적 사고력의 함양이라는 목적과는 무관하게 입시 선별과 서열화의 도구가 됐기 때문이다. 수학시간은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 학생과 학교수업만으로 만족 못하는 학생들로 양극화돼 있다는 게 일선 교사들의 목소리다.
□ 그런 점에서 새 교육과정에서 모든 고교생에게 ‘행렬’을 가르칠 것인가를 놓고 벌어지는 논란은 주목된다. 교육부는 현재 중학교 1학년생이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2025년부터 적용될 새 수학과 교육과정을 연내 발표할 예정인데 ‘행렬’ 포함 여부를 놓고 논란이 뜨겁다. 수학ㆍ과학계는 행렬이 인공지능(AI) 등 4차산업 이해를 위한 기초소양이라며 필수과정으로의 편성을, 교육운동단체와 일부 교사들은 AI 쪽을 지망하지 않는 학생들의 학습부담 증가를 들어 반대하고 있다. 수학교사 66%가 행렬을 ‘선택과목’으로 포함시키도록 응답했다는 조사도 있다. 창의력ㆍ논리력ㆍ문제해결 능력을 북돋우기 위해 수학과목의 난도를 높이는 길과 학습부담을 줄여 학생들에게 수학을 수학답게 배우는 기회를 주자는 길, 두 갈래 길에 선 정부가 묘수를 내놓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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