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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실수의 정치학

입력
2022.10.05 00: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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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 현안과 관련해 발언을 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 현안과 관련해 발언을 하고 있다.

별생각 없이 내뱉은 말실수라고 생각했던 일이 점점 커지더니 외교수장에 대한 해임건의안 가결까지 이어졌다. 아무리 들어도 필자의 귀에는 '바이든'으로 들리지만, 당사자가 한사코 아니라고 하니 그러려니 해야지 어쩔 도리는 없다. 하기야 이제 '바이든'인지 '날리면'인지는 중요하지 않으며, 저 세 글자가 어떻게 들렸는가가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드러내는 기준이 되어 버렸다.

사실 대통령의 말실수 논란 자체는 이전에도 있었고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다. 핵심은 15시간이 걸려 대통령실이 내놓은 해명이다. 대통령의 말실수야 습관 혹은 부주의함의 소산일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실이 내놓은 해명은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고민 끝에 내놓은 전략적 선택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선택의 핵심은 '바이든'을 '날리면'으로 되침으로써, 대통령의 발언이 적절한가에 대한 논란을 발언의 내용에 대한 공방으로 옮기는 것이었다. 전자는 가치 판단의 영역이지만, 후자는 사실 여부에 대한 팩트체킹의 영역에 속한다. 그렇다면 물어야 하는 질문은 이러한 전환을 통해 얻고자 하는 정치적 목표는 무엇인가이다.

최근 필자가 참여한 연구회에서 흥미로운 발표를 접했다. 한 연구에 따르면 가짜뉴스를 퍼트리는 이유는 반드시 가짜뉴스를 접한 사람들이 그 내용을 믿도록 설득하기 위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가짜뉴스의 내용이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가와 상관없이 단순히 가짜뉴스와 그에 대한 팩트체킹이 혼재되어 돌아다니는 상황 자체가 사람들로 하여금 미디어 환경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며, 결과적으로 새로운 정보를 탐색하고 정확한 판단에 이르고자 하는 의욕을 하락시킨다. 그러니 이걸 누가 믿을까 싶은 가짜뉴스조차도 퍼트릴 이유가 있는 것이다. 내용을 믿으면 좋고 믿지 않아도 상관없다. 어차피 목적은 듣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며, 팩트체킹을 통해 시시비비를 가리려는 시도는 오히려 누구의 말도 신뢰하기 힘들다는 생각을 강화할 뿐이다. 진정한 목적은 사람들로 하여금 상황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을 내리게 하기보다는 그저 기존의 성향에 기대어 익숙한 행동 패턴을 답습하게 하는 것이다.

논란 이후 지금까지 진행된 상황은 대통령실의 전략이 충분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렇게 본다면 대통령실의 해명을 통해 '이 XX'의 대상이 미국 의회가 아니라 한국 국회로 바뀐 것도 이해할 수 있다. 과연 대통령실은 행정부의 수반이 입법부를 싸잡아 비하했다는 의미로 읽힐 수 있는 해명이 또 다른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사실을 예상하지 못했을까? 오히려 입법부 비하로 받아들여져도 상관없다고 판단했다는 것이 정확한 해석일 것이다. 어쩌면 차라리 잘된 일일지도 모른다. 덕분에 국회는 대통령이 밖에서 한 잘못을 지적하고 나무라는 위치에서 끌어내려져 진흙탕 싸움의 직접적인 당사자가 되어 버렸다.

물론 필자의 상상력이 지나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서는 옳고 그름을 떠나 대통령실의 해명이 차라리 뭔가 전략적 사고의 결과이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 그렇지 않다면, 만일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대통령의 고집에 어쩔 수 없이 대통령실이 끌려다니며 뒤치다꺼리만 하는 상황이라면 그것이 더 슬프고 참담할 것 같다.


장승진 국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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