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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가를 틈탄 가격담합은 소비자 배신행위

입력
2022.10.10 00:0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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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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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앙은행이 초(超)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3연속 빅스텝(이자율 0.75%p 인상)을 단행했다. 물가상승률이 목표치에 도달할 때까지 상당 기간 고삐를 죌 것이 확실하다. 이자율의 급격한 인상으로 소비가 위축되고 기업들은 고용을 줄이고 투자를 취소하고 있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는 미국발 위기의 영향을 고스란히 받고 있다. 고(高)물가·고이자·고환율의 3중고 태풍 속에 가계부채와 6개월 연속 무역수지 적자로 경제가 불안하기 짝이 없다. 고물가와 함께 경기침체가 상당 기간 우리네 삶을 팍팍하게 만들 것이다. 작금 경제위기는 미국의 고물가가 잡혀서 공격적인 이자율 인상이 멈춰야 진정될 것이다.

필자에게는 1990년대 초 물가 단속과 관련된 기억이 아직도 선하다. 국민생활과 밀접한 분야의 물가 인상을 자제시키기 위해 공정거래위원회 직원들이 미용실, 이발소, 중국집 등을 방문해 가격 인상 계획과 이유를 파악하곤 했다. 새내기 공무원으로 연말연초에 가격동향을 점검하기 위해 업체를 방문한 적이 몇 차례 있다. 당시에는 사업자 단체를 중심으로 업체들이 가격을 일시에 유사하게 인상하는 것이 빈번했다. 관련 부처가 가격 인상 자제를 요청하고 공정거래위원회까지 물가 점검에 동원되면 가격 인상을 포기하기도 했다. 2008년 소위 MB 물가관리 때도 관리 품목을 정해 반강제적으로 가격 인상을 자제하게 했다. 지금은 어떤가. 언론에 비치는 모습은 옛날 방식과는 많이 달라진 것 같다. 하지만 정부의 물가관리방식에 대해서 기업들은 예나 지금이나 상당한 부담감을 가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가격 인상에는 저마다 나름의 이유가 있다. 공급망 붕괴에 따른 원재료가격 상승, 환율 상승으로 인한 수입가격 상승, 유가 상승 등 불가피한 면이 없지 않다. 경제가 어려워도 경쟁이 살아 숨 쉬면 눈치라도 보고 많이 올릴 걸 적게 올리거나 지금 올릴 걸 뒤로 미루기도 한다. 하지만 담합이라면 상황이 다르다. 경쟁을 포기하고 마치 독점 사업자와 같이 가격을 올릴 수 있다. 지금과 같은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담합에 의한 가격 인상은 소비자에게 여간 고통스러운 게 아니다. 가격담합은 뻔뻔하기 짝이 없으며 소비자에 대한 배신행위이다. 오죽하면 담합을 시장경제의 가장 암적인 존재라고 하지 않나. 공정거래위원회가 나서서 담합에 대해서는 반드시 적발하고 관용을 베풀지 않겠다는 의지를 확실히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서 가격담합이 시장에서 발도 못 붙여야 한다.

담합의 폐해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소비자가 지불해야 하는 가격이 올라간다. 경쟁압력 부재로 기술개발과 품질 개선 노력을 게을리하여 기업의 경쟁력도 약화된다. 시장기능 왜곡에 따른 자원배분 효율성 저해, 성장 없는 물가 상승, 한계기업의 시장퇴출 지연에 따른 구조조정 저해 등의 폐해도 초래된다.

지속적인 법 집행에도 불구하고 담합이 만연한 이유는 담합에 따른 기대이익이 기대비용보다 크기 때문이다. 담합 억지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처벌을 강화하여 기대비용을 높여야 한다. 담합 과징금 상한은 지난해 말 10%(해당 담합행위로 부당하게 얻은 매출액 기준)에서 20%로 높아져 선진국 수준에 근접하였으나 그동안의 평균 부과율은 채 5%도 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과징금 실질부과율을 대폭 높이고 담합 가담자에 대한 고발권도 더 적극적으로 행사해 담합 유혹을 철저히 차단해야 한다.


김형배 한국공정거래조정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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