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그레고리 벡 교수는 1986년에 기술이 발달할수록 대형재해를 가져올 위험을 증대시킨다는 통찰적 예견을 하였다. 물론 그가 이번 SK C&C의 배터리 화재 사고가 카카오 블랙아웃이라는 재난을 가져온 것과 같은 인터넷 플랫홈 기업에 관한 것을 생각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지난주 재발방지를 위한 조치, 즉 대표의 사퇴와 사용자 피해보상 등이다. 구글 등 외국의 초대형 기업들은 이런 사태에 대비하여 엄청난 액수의 인프라 투자를 했다는 얘기를 빼놓지 않고 말이다. 그런 이번 조치는 두 가지 점에서 문제다. 첫째 책임을 카카오라는 기업의 역할에 국한시키고, 둘째로는 상업적 폐해로 국한된다는 근본적 한계가 있다. 현대사회의 특성에 비춰봐서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성찰적 고민은 찾아볼 수 없다.
'위험사회론 재조명(The Risk Society revisited·유진 로자 공저)'이란 책에서 문제의 본질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그들은 오늘날 위험사회는 복잡성(complexity), 불확실성(uncertainty), 모호성(amibiguity)이라고 규정한다. 카카오 사태의 본질도 따지고 보면, 이런 세 가지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지난주 수습대책을 보면, 이와는 반대로 배터리 사고로 '단순'화하고, '확실'하고, '명확'한 위험으로 축소하고 있다. 똑똑한(?) 엘리트들의 분석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루만(Luhmann)의 지적대로 과학·기술 엘리트들의 위험에 대한 인식과, 일반대중이 겪는 실제 위험과는 큰 갭이 있다는 지적과 일치한다.
정부 차원의 위험인식도 재발방지 법안을 만드는 정도로 가볍다. 1994년 정부는 체신부를 정보통신부로 바꾸면서 IT분야를 육성하여 수출효자산업으로 키우는데 성공했다. ICT 강국이 된 것은 물론이고, AI, 메타버스 등 최근 새로운 분야는 우리나라만큼 앞서가는 나라가 없어서 한국이 다국적 기업의 실험장이 될 정도이다.
이것이 자랑스러운 일만인지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인간성 파괴, 사람과 사람 간 관계변화 등에 대한 성찰이 없기 때문이다. 즉 무엇을 위한 기술발전이냐는 철학적 성찰이 부족하다.
예컨대 카카오 발달이 진정으로 인간다운 삶을 증진시키고 행복하게 만들었는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 인간이 편하자고 만든 인터넷에 인간이 종속되어 가고 있고, 심지어 자기도 모르게 조종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애써 외면하는 것이다. 하루 종일 스마트폰에 얽매여 있고, 게임중독자는 늘어가고, 해킹과 스미싱으로 일상이 무너져서 고생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대면접촉이 두려운 대면기피증, 전화통화를 두려워하는 폰포비아도 양산되고 있다. 자기 방에 갇혀서 하루 종일 나오지 않고 아예 사회와의 대화도 절연해 버린 사회적 고립아가 수만 명이 된다는 현실도 주시해야 한다. 이러한 현상이 진정으로 한국사회를 위험사회로 만드는 것 아닌가?
정보화 분야의 위험사회에 대해서 총체적이고 장기적인 대비가 절실한 때이다. 정부에 가칭 '위험사회위원회'를 만들고, 어떻게 하면 모든 국민들이 이런 위험으로부터 안전해질까라는 '안전국가'를 만드는데 패러다임 전환이 있어야 할 것이다. 정부출연 연구소도 정권에 필요한 정책만 만드는 데 급급하지 말고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예방하기 위해 씨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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