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농업의 근간인 쌀 산업이 천덕꾸러기가 되어가고 있다. 지난해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은 하루에 한 공기 반 정도로 역대 가장 적었다. 2000년 93.6㎏에서 2022년 56.7㎏으로 22년 만에 40% 가까이 줄었다. 쌀값 하락에 대한 정부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농민들의 목소리가 커졌고, 정부는 성난 농심을 달래기 위해 2022년 쌀 시장격리에만 1조7,000억 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었다.
어느 산업이건 자구책을 찾지 못하면 그 산업은 살아남기 힘들다. 때에 따라 각광받는 산업은 있겠지만, 원래부터 망하게 되어있거나 흥하게 되어있는 산업은 없다. 첨단 IT산업이나 인기 있는 서비스업이라 하더라도 시장이 늘 핑크빛 낭만만 안겨주는 것은 아니다.
K-컬처의 선봉에 서 있는 한국 영화도 과거 큰 위기가 있었다. 2006년 2월 미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의 선결 조건으로 우리 영화의 스크린쿼터 축소를 내걸었다. 당시 스크린쿼터는 한국 영화에는 호흡기와 같은 존재였다. 그걸 떼는 순간 사망 선고를 받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영화계는 농업계와 손을 잡고 스크린쿼터 사수를 위한 '영화와 쌀' 연대까지 선언할 정도로 반대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146일의 스크린쿼터를 73일로 줄일 수밖에 없었다.
한국 영화 역전 스토리는 놀랍게도 그때부터 쓰여졌다. 영화인들은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는 자강불식(自强不息)으로 대응했고, 우리 영화산업은 결국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라섰다. 2020년 아카데미상을 휩쓴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 작년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헤어질 결심'의 박찬욱 감독, 에미상을 받은 '오징어 게임'의 황동혁 감독 등 한국 영화를 빛내고 있는 주역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늘었다. 이러한 영화인들의 노력 덕분에 지금의 한국 영화 르네상스 시대를 열 수 있었다.
한국 농업도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충분히 매력적인 산업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양복 차림으로 농사를 짓는 일본의 신세대 농부 이야기는 귀 기울여 들어볼 만하다. 일본 역시 젊은이들이 떠나는 바람에 농촌이 활기를 잃어가고 있다. 300년째 대대로 농사를 지어온 사이토 기요토씨도 농사짓는 것이 힘들고 돈이 안 되어 농촌을 떠났다가 2013년 우여곡절 끝에 결혼과 더불어 고향으로 다시 돌아왔다.
사이토씨는 '즐겁게 일하는, 멋진 농부가 되는 법은 없을까'를 고민했다. 마침 의류업을 하는 형이 "나라면 양복 입고, 농사지을 텐데"라고 거들었고 그는 즉각 실천에 옮겼다. 할아버지는 "당장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오라"고 호통을 쳤지만, 사이토씨는 못 들은 척하였다. 그는 미소 짓는 얼굴로 논 한가운데서, 양복을 입고 멋진 중절모를 눌러 쓰고 농사를 지었다. '집으로 복을 부르는 쌀'이란 뜻을 가진 '가부라쌀(家福來米)'이란 제품도 만들었다. 특히 주목을 받는 것은 제품 디자인이다. 마케팅 차원에서 쌀 포장지에 양복 디자인을 입혔다. 그 결과 입소문을 탄 구매가 활기를 띠면서 현재 '슈트 농가 사이토군'이란 브랜드는 해외에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매력적인 농업을 만드는 일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농민 스스로도 나만의 농업을 만들기 위해서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 일부에서 약진하고 있는 성공 사례들은 결국 개인의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노력에 힘입은 바가 크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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