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가 지배하고 있는 세상이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2022년 한국미디어패널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구의 디저털TV 보급률은 95.6%, 데스크톱 컴퓨터는 52.5%, 노트북 컴퓨터는 34.1%, 태블릿PC는 31.2%이고, 개인 스마트폰 보급률은 94.2% 정도다. 같은 연구의 미디어 이용시간을 보면 TV나 컴퓨터를 켜 놓고 전화기를 이용하는 경우를 포함하더라도 하루에 약 7시간 이상 미디어를 이용하고 있다. 이만하면 하루에 눈 뜨고 있는 시간의 절반 가까이 미디어를 이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미디어의 힘은 어느 정도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디어가 개인이나 사회에 어느 정도의 영향력은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영향력은 때로는 너무 광범위하고 때로는 다른 조건들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명확하게 밝혀내기가 쉽지 않다. 확실한 것은 미디어의 효과가 미디어 메시지, 수용자, 맥락 및 상황의 상호작용을 통해 발생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디어의 힘이 '있다' 혹은 '없다', '크다' 혹은 '작다'라는 명확한 대답보다는 '특정 조건과 상황에서 특정 미디어 메시지에 노출된 특정 집단의 사람들에게 어떤 유형의 효과가 발생하는지'를 밝히는 것이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
미디어의 힘을 논의할 때 대체로 언론의 영향력에 초점을 두곤 한다. 언론의 힘이 강하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미디어를 이용한 선전(propaganda)이나 미디어 캠페인을 통해 대중의 의식과 태도를 특정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언론의 힘이 약하다는 측은 언론이 특정한 주제에 대한 단기적 인식이나 중요성을 판단하는 데에는 상당한 영향을 준다고 하더라도 개인의 태도나 행동을 변화시키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주장한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실시한 2022년 언론수용자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언론이 누리는 영향력과 언론 자유에 비해 공정, 신뢰, 정확, 전문성이 부족하다고 인식하고 있다. 이용자들 인식이 그렇다면, 이용자들의 태도나 행동 변화에 언론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언론의 힘이 객관적으로 강한지 약한지 논의하기에 앞서 자신의 상황이나 위치에 따라 언론의 힘이 강하다고 믿고 싶거나, 언론의 영향력을 무시하고 싶은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예컨대 선거 관련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는 후보는 관련 여론조사보도가 유권자의 투표에 강력한 영향력을 줄 것으로 기대하지만 다른 후보들은 영향력을 무시하고 싶어질 것이다.
우려스러운 점은 언론의 힘을 지나치게 강하다고 믿는 경우에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이다. 정치적으로 미성숙하거나 안정되지 못한 사회에서는 언론을 통제함으로써 국민과 사회를 지배할 수 있다고 믿는 경우가 생긴다. 그런 사회일수록 언론 탓을 하거나 과도한 규제나 통제의 대상으로 삼는다. 최근 우리 사회는 언론의 힘을 지나치게 강하다고 인식하는 개인이나 집단이 많은 듯하다. 이러한 개인이나 집단이 언론이 공정하지 않고, 신뢰가 가지도 않고, 전문성도 부족하다고 인식한다면 언론의 자유가 지나치다고 판단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논리이다.
하지만 위에 언급한 한국언론재단 조사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 이용자들이 언론 보도의 편향성, 편파성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이용자들의 자정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어쩌면 언론의 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강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만큼 약하지도 않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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