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하는 데 그쳤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과 유럽의 크레디트스위스(Credit Suisse) 위기 등 금융불안이 겹치면서 베이비스텝만 단행한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기준금리는 이번 조치로 5%에 진입했다. 고금리에 취약한 고객 및 자산 포트폴리오를 갖고 있는 금융기관들의 불안은 여전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적 인플레이션 현상으로 각국 중앙은행들의 고금리 정책 기조는 유지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고금리 정책은 현시점에서 유효한 정책일까. 지난 수십 년간 인플레이션과 전쟁을 치르며 정책적 노하우를 쌓아온 각국 중앙은행들의 처방이 이번에는 잘 듣지 않는 모습이다. 필자는 그 이유가 ①우리가 직면한 인플레이션이 공급부족에 기인하고 있다는 점 ②중앙은행들이 공급부족을 해결하는 데 마땅한 수단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전 세계적으로 이런저런 가계 지원정책으로 시중에 돈이 많이 풀린 것은 사실이나, 우리는 경기 과열을 경험하고 있지 않다.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물가상승 압력은 과잉수요가 아닌 공급부족이 원인이다. 가장 손쉽게 떠올릴 수 있는 원인은 우크라이나 사태다. 이는 에너지 및 식량 가격의 상승을 유발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사태도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인플레이션의 주원인은 아니다. 데이터를 살펴보면 미국과 유럽의 인플레이션은 이미 2021년 봄부터 일어나고 있었다.
우리가 간과한 더 근본적 원인들이 있는 것이다. 미중 갈등과 경제안보 중시 기조 속에서 각국이 공급망 재편에 나서고 있다. 기존의 효율적인 생산 네트워크를 추가 비용을 들여 재편하는 것은 당연히 가격 상승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 또한 야심 찬 탈탄소 계획과 그린 전환도 추가 비용을 낳고 있다. 미중 경쟁과 탈탄소 정책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점에서 인플레이션도 상당 기간 장기화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또한 코로나19는 노동시장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대표적인 것이 비경제활동인구의 폭증이다. 다시 말하면, 실업자도 아니고 취업자도 아닌 자발적으로 경제활동을 포기한 인구의 증가다. 현재 미국의 실업률은 역대 최저 수준이다. 그리고 연준은 실업률 수준에 맞춰 금리를 조정하겠다고 시사했지만 비경제활동인구가 폭증한 가운데 집계한 실업률은 착시가 아닐까. 어쩌면 적정 생산을 위한 노동력 부족과 그로 인한 공급 차질이 더 현실적인 문제라고 생각된다.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억제하지 못하면 물가-임금 동반 상승작용으로 인플레이션이 악화될 수 있기 때문에 중앙은행의 정책대응은 중요하다. 그러나 동시에 대표적인 통화주의자인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이 지적했듯이 통화당국이 단기적 시각에서 정책을 운용하면 오히려 경기변동폭을 확대시킬 수도 있다. 특히 공급부족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에 통화정책만으로 대응하는 것은 블랙박스를 건드리는 것일 수도 있다.
소비자들의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관리하면서도 공급자들이 투자를 늘릴 수 있도록 유도하는 세분화된 또는 표적화된(targeted) 정책대응이 동시에 필요한 상황이다. 결국 공급부족을 원인으로 하는 인플레이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제 구조개혁이라는 큰 틀의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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