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한국 노인빈곤에 대한 OECD의 잘못된 추정

입력
2023.06.22 00:00
27면
0 0
EBS 다큐멘터리K 인구대기획 초저출생 영상 캡처

EBS 다큐멘터리K 인구대기획 초저출생 영상 캡처

최근 연금개혁 관련, 의미 있는 일이 있었다. 5월 24∼25일 개최된 OECD 아시아·태평양 지역 연금 전문가 회의였는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무국의 잘못된 정책권고를 점검할 수 있었다.

그동안 OECD는 우리 국민연금의 실질 소득대체율이 너무 낮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국민연금의 40%, 소득대체율은 40년을 모두 채워야 받을 수 있는데, 가입자의 평균 가입기간은 27년에 불과하므로 실제 받을 수 있는 연금액은 훨씬 적을 것이라고 봐서다. 그러므로 OECD는 연금 지급률을 더 올리거나 현 수준에서 멈추라고 권고해 왔다.

국민연금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한 필자 연구진의 연구에 따르면, 1970년 태어난 동일 연령층일지라도 소득수준별로 실제 가입 기간의 차이가 클 것으로 전망된다. 소득수준을 기준으로 1970년 출생한 국민연금 가입자를 구분해 보면, 소득이 제일 낮은 소득 1분위의 예상 가입기간은 19.4년인 데 비해, 소득이 제일 높은 10분위는 33.9년으로 예상되었다. 이는 현행 국민연금법을 적용하여 향후 50년 뒤에도 국민연금 보험료를 59세까지만 납부한다는 가정을 적용한 결과다.

2023년 현재 국민연금 수급연령은 63세이며, 2033년에는 65세가 되어야 연금을 받을 수 있다. 고령사회에 대처하기 위해 고령 근로를 활성화하자는 OECD 정책권고를 고려하면, 보험료 납부 연령 상한을 59세로 계속 유지한다는 가정은 비현실적이다. 노동시장 개혁으로 임금체계를 직무급으로 변경해 계속 일할 수 있게 하면 가입기간을 5년 더 늘릴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소득이 높은 10분위는 장기적으로 가입기간이 40년에 달할 수 있다. 실제 소득대체율과 이론적 소득대체율에 차이가 없어지게 된다.

독일과 스웨덴은 이미 실제 가입기간이 40년을 넘어섰다. 목전에 온 인생 100세 시대에서, 그것도 50년이나 더 지난 후에도 가입기간을 27년으로 전망해, 연금 급여율을 더 올리자는 OECD 사무국 주장이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보는 이유다. 더군다나 고소득 국민연금 가입자 대다수는 퇴직연금 혜택도 받고 있어, 제대로 노후설계를 한다면 이들 집단은 안정적인 노후소득 확보가 가능하다. 이러한 측면을 고려하면 OECD는 일률적인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 대신, 취약계층의 노후소득을 강화할 수 있게 연금을 개혁하라고 권고했어야 했다.

우리나라가 OECD 회원국 중에서 노인 빈곤율이 제일 높다는 사실도 왜곡되어 있다. 각종 OECD 지표로 비교해 보면, 높은 노인 빈곤율의 실상은 노인집단의 소득 및 자산 양극화에 있다. 그 어느 회원국보다도 노인집단의 소득과 자산 양극화가 심각함에도 평균적인 접근만 취하다 보니, 대다수 노인이 빈곤하다는 착시 효과를 유발한다. OECD가 사용하는 빈곤율 측정기준인 가처분소득 외에도, 자산까지 고려하면 우리나라의 높은 노인 빈곤율은 획기적으로 낮아질 수 있다. 지난 6월 5일 한국경제학회·한국통계학회·통계청이 공동 주최한 포럼에서 류근관 전 통계청장(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의 발표 자료에도 노인이 보유한 자산을 고려하면 노인 빈곤율이 낮아질 수 있다는 내용이 있다.

이번 OECD 회의에서 필자는 짧은 국민연금 가입기간과 우리나라의 높은 노인 빈곤율이 평균의 함정에 기인함을 강조하였다. 이에 대해 OECD 보고서 저자인 앤드루 라일리(Andrew Reilly)는 현장에 있었음에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런데, 국회 연금특별위원회나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에서는 이러한 이슈들이 논의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논점들이 제대로 다루어져야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일률적으로 올리자는 주장과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더 주자는 주장의 문제점을 밝힐 수 있다. 그런데도 증거에 기반한 논의 대신에, 우리 사회는 여전히 사회적 합의만을 강조하고 있다.

최근 방영된 EBS TV ‘다큐멘터리K 인구대기획 초저출생’ 1부는 시사하는 점이 많다. 10대부터 70대까지 전국의 현장과 온라인에서 만난 500명 투표인단의 투표 결과가 놀라워서다. “연금 수급자는 연금을 덜 받고, 가입자가 더 부담하는 것에 대해, 전체 투표인단의 절반 이상이 동의”했다. 우리가 처한 어려운 현실을 정치적인 편향성 없이, 중립적으로 국민에게 제대로 전달한다면, 어려워 보이는 연금개혁이 가능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류근관 전 통계청장 발표의 지정 토론자로 참여했던 필자는, 지금도 그의 외침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젊은층을 착취하는 연금제도를 빨리 개혁해야 한다.” 증거에 기반한 연구가 필요하고, 이러한 연구내용에 근거하여 연금논의가 이루어져야 제대로 된 연금개혁이 이루어질 수 있다. 증거 기반 연구와 행정의 필요성,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기획재정부의 외청에 머물러 있는 현재의 통계청을 통계처로 격상해야 한다는 류 전 청장 주장이 그래서 더욱 공감이 간다. 필자의 반박에 대한 OECD의 반응과 EBS 다큐멘터리의 연금개혁 방향에 대한 투표결과는 증거에 기반한 연금개혁 논의의 필요성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한국연금학회 전 회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