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필자가 가장 관심을 가졌었던 대목은 '대한민국 헌법 4조'와 관련한 질의응답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통일부장관 후보자를 지명하면서 헌법 4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강조했다는 점이 물론 첫 번째 이유였다.
그러나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1980년대 마르크스레닌주의 서적 출간을 생업으로 삼았던 장관 후보자, 한때 주사파 이력을 청산하고 북한 인권 운동에 매진해 온 여당 의원, 자유민주주의 용어보다는 분배정의와 평등을 강조하는 민주주의를 선호했던 86세대 의원들, 고위급 북한 외교관을 지낸 탈북민 출신 의원 등이 한자리에 모였다는 사실이 주는 호기심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문제를 제대로 거론한 의원은 없었다. 오전 내내 유튜브, 은마아파트, 장학금 등의 이슈만으로 청문회장이 뜨거웠다. 자정이 다 된 시각 마지막 질의자로 나선 야당의원이 '청문회와 관계없이 자유민주적 평화통일이 무엇인가에 대해 논의해 볼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슬쩍 언급하고 넘어간 것이 전부였다. 야당의원이 제안한 '기회'가 올지 안 올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중을 위해서라도 헌법 4조에 대해 몇 가지 대목을 짚어두는 것은 유용할 듯하다.
엄밀하게 따지면 헌법 4조가 규정하고 있는 대목은 '자유민주적 평화통일'도, '자유민주주의'도 아닌 '자유민주적 기본질서(the basic free and democratic order)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이다. 헌법조항을 구성하는 하나의 문장 내에서도 보수세력은 '자유민주적'이라는 정체성을 강조하고 진보세력은 '평화적'이라는 방식을 앞세운다.
헌법 4조를 신설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개념이 우리 헌법에 포함된 것은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직선제 개헌'으로 알려진 9차 개헌에서부터였다. 1972년, 7차 개헌을 통해 우리 헌법에 평화통일 조항이 자리 잡은 이후 5공화국 헌법까지는 대통령의 평화통일 의무를 유지해 왔을 뿐 통일의 추진원칙과 방향에 대해서는 별도의 조항이 존재하지 않았었다. 민주화 이후 여야 합의로 탄생한 헌법에서 비로소 통일 과정과 통일 이후 국가체제에 대한 법적 단서를 제공한 것이다. 따라서 민주화 세력을 자부하는 야당이 '자유민주적'이라는 용어에 거부감을 가지는 것은 이율배반적으로 느껴진다.
헌법학자들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조항이 우리 헌법에 포함된 연원을 서독의 기본법(Grundgesetz)에서 발견한다. 나치가 다수결 원리를 바탕으로 전체주의 국가를 세워 유럽을 전쟁의 참화로 몰아넣었던 기억을 갖고 있는 서독 국민들은 민주주의의 본질을 침해하려는 세력으로부터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에 반하는 권리나 사상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공감대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른바 '방어적 민주주의(defensive democracy)'라는 정치철학이다.
남북한이 별개의 국가를 수립하고 두 세대를 거치는 동안 자유민주주의를 채택한 대한민국은 G7의 반열에 오른 선진민주국가로 성장했고, 북쪽의 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고립된 전체주의 국가로 전락했다. 87년 헌법의 설계자들이 한 세대 뒤의 한반도 상황을 예측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혜안이 통일정책의 주춧돌을 놓은 것은 평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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