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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곱투표'라는 선거혁신

입력
2023.08.09 00: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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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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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들이 살아갈 미래가 훨씬 긴데 왜 나이 든 사람들이 똑같이 표결하고 자신들의 미래를 결정하느냐'는 중학생의 문제 제기는 충분히 생각해볼 가치가 있다. 김은경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의 발언에서 노인 폄하 논란을 불러일으킨 부적절한 표현보다 더 아쉬운 부분은 진지한 질문에 대해 1인 1표가 민주주의 원칙이라는 공허한 대답에 그쳤다는 점이다.

저출생 및 초고령화 현상은 한국의 유권자 지형을 크게 변화시키고 있다. 2020년까지만 해도 전체 유권자 세 명 중 한 명이 20~30대였으며, 60세 이상 유권자의 비율은 27.9%를 차지했다. 그러나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2050년이 되면 60세 이상 유권자가 전체 유권자의 절반을 넘어서는 반면에, 20대나 30대 유권자 비중은 각각 한 자릿수 남짓으로 떨어질 수 있다고 예측된다. 즉 지금의 중학생이 그 또래의 자식을 둘 때쯤이면 세대 간 정치적 불평등을 넘어 특정 세대의 정치적 소멸을 걱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학계에서는 인구구조의 변화에 걸맞은, 나아가 1인 1표라는 형식적 평등을 넘어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가 실질적으로 대표되기 위한 투표제도에 대한 고민이 진행되고 있다. 그중 하나가 국내에서도 간간이 소개된 바 있는 제곱투표(quadratic voting)이다. 모든 유권자는 선거권자가 되면서 평생 사용할 수 있는 크레디트(표의 수)를 받고, 이후 선거에서 자신이 원하는 수만큼 투표권을 행사한다. 개인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선거에서 크레디트를 더 많이 사용할 수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 다음 선거로 크레디트를 넘기는 등 자율적 선택이 가능하다. 그리고 선거 결과를 집계할 때 표는 개별 후보에게 던진 크레디트의 제곱근으로 계산한다. 예를 들어 한 후보에게 100크레디트의 표를 주었다면 10표로, 25크레디트의 표를 주었다면 5표로 계산하는 것이다. 투자한 크레디트의 제곱근만 반영하는 이유는 소수의 의견이 결과에 지나치게 큰 영향을 끼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제곱투표는 단순히 생애주기에 걸친 정치적 영향력의 배분이라는 차원을 넘어서는 고민을 담고 있다. 어떤 사회든 다수파와 소수파가 존재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계적으로 1인 1표라는 원칙을 적용하다 보면 소수파의 목소리는 항상적으로 배제될 수밖에 없다. 1인 1표의 원칙은 '선호의 강도'를 고려하지 못하고 모든 선호에 동일한 가중치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제곱투표는 정치적 평등의 원칙을 어기지 않으면서도, 특정한 상황에서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보다 더 강력한 이해관계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집합적 선택을 가능하게 하는 방안이다. 즉 다수파가 특별히 강한 이해관계를 가지지 않는 조건이라면 소수파가 다수의 크레디트를 투자함으로써 자신들의 의견을 관철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실질적' 민주주의는 1인 1표에 기반한 다수결에 비해 전체 사회 차원에서 더 큰 효용을 가져올 수 있다.

물론 제곱투표는 당장 현실화되기 어려운 하나의 아이디어일 뿐이다. 그러나 청년층, 나아가 다양한 사회적·경제적 소수자들이 민주주의 과정에서 소외되는 상황을 어떻게 제도적으로 극복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의 산물이다. 단순히 너희들도 열심히 참여하라는 주문만 반복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도 혁신적이지도 않다.


장승진 국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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