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제유가와 원·달러 환율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국제유가는 중동지역의 긴장 고조로 브렌트유 기준 배럴당 90달러를 넘었고 원·달러 환율은 미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 시점이 지연되며 1,300원대 후반까지 상승했다.
국제유가와 환율 상승은 물가안정을 위협하는 공급 측 요인이다. 국제유가 상승은 2~3주 후 국내 석유제품 가격을 끌어올리고 환율 상승은 수입 제품의 원화 표시 가격을 높여 물가를 상승시킨다. 또한 국제유가와 환율 상승은 수입 원자재 가격, 운송비 등 기업의 비용 부담을 높여 제품 가격 인상을 유발한다. 따라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가 최근 낮아진 것은 일견 당연하다.
하지만 국제유가와 환율 상승은 경기 침체를 심화시켜 수요 측 물가상승 압력을 낮추기도 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국제유가가 10% 상승할 때 글로벌 생산이 0.15%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말부터 반도체를 중심으로 우리 수출이 빠르게 회복되고 있지만, 국제유가 상승으로 글로벌 생산이 감소하고 이로 인한 소득 하락이 글로벌 수요를 위축시키면 수출 회복세도 둔화될 것이다. 또한 국제유가와 환율 상승으로 수입액이 증가하면 무역수지가 다시 감소해 한국 경제의 회복을 지연시킬 것이다. 이는 수요 측 물가 상승 압력을 감소시켜 고금리 지속 필요성을 낮춘다.
더욱이 근원물가 상승률 추이를 보면 고금리 장기화로 수요 측 물가 상승 압력은 이미 빠르게 하락하고 있다. 근원물가 상승률은 변동성이 크고 공급 측 요인에 주로 영향을 받는 에너지와 식료품을 제외한 후 전년 동월 대비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을 계산해 수요 측 물가 상승 압력을 나타낸다. 근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3월 4.0%에서 1년 만에 2.4%까지 하락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근원물가 상승률은 하반기에 2%까지 하락할 것이 예측된다.
통화정책은 1~2년의 시차를 두고 상품 및 서비스 수요에 영향을 미치는 반면 공급 측 요인에는 큰 효과가 없다. 수요 측 물가 상승 압력이 빠르게 하락함에도 불구하고 공급 측 물가 상승 요인에 대응하기 위해 고금리를 지나치게 오래 끌고 갈 경우 불필요하게 경기 침체의 골이 깊어진다. 그러므로 한국은행은 하반기에는 기준금리 인하를 시작해 서서히 긴축의 정도를 낮춰가야 한다.
또한 여소야대 정국 속에서 건전재정 기조를 유지하려는 여당과 정부지출 확대를 요구하는 야당이 팽팽히 대립하면 하반기에도 재정정책을 통한 경기 부양은 여의치 않다. 통화정책에 거는 기대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미 세계 중앙은행들은 자국의 수요 측 요인을 고려해 기준금리 인하 시점을 저울질하고 있다. 스위스중앙은행은 물가가 안정되면서 지난 3월 코로나 팬데믹 이후 주요국 중 최초로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미 연준은 여전히 탄탄한 경기 탓에 기준금리 인하에 신중한 반면 유럽중앙은행은 부진한 유로지역의 경기에 6월 기준금리 인하를 시사했다.
기준금리 인하의 시작이 긴축에서 완화로 통화정책 기조의 전면 전환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한국은행도 수요 측 요인을 고려해 긴축의 정도를 점진적으로 낮추되 국제유가와 환율 등 대외 여건에 따라 그 속도를 조절하는 정교한 출구전략을 설계할 때다. 이번 인플레이션 위기에 선발 투수로 활약했던 한국은행이 매끄러운 마무리로 승리 투수가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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