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에서 만난 한 은퇴한 미국 정부 관계자는 "한국은 제발 좀 품위 있게 정보를 수집해라. 말은 안 하지만, 여기서 다들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고 말했다. 지한파로 잘 알려진 그는 한국이 고쳐야 할 점에 대해서는 종종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에 따르면, 워싱턴에서 한반도 관련 세미나에 재정적 후원을 하는 한국 정부 기관의 인사가 비공개 행사에도 버젓이 온다는 것이다. 사실상 유일한 '방청객'이다. 한국 측의 재정 지원은 감사하지만, 그것을 빙자해 비공개 모임까지 참석하여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것이다. 그러곤 한마디 더 얹는다. "한국이 동맹이라서 봐주는 거다. 모르는 게 아니다."
한마디로 '선'을 지키라는 것이다. "일본 측은 자기가 돈을 대는 행사라도 비공개회의면 참석하지 않는 신사협정을 지킨다. 한국 측과 다르다. 그러니 미국 측 참석자들 사이에서 불평이 나왔다. 한국은 이러다 국가 이미지가 실추될 수 있다."
이 일화는 당시의 한국 측 인사가 더 이상 워싱턴에 근무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여기 소개한다. 그는 귀국해 승진했단다. 아마도 미국에 근무할 때 '보고서'를 열심히 작성한 것도 인정받았을 것이다. 다만 이런 행동은 본인에게는 득이 될지 모르지만, 후임자에게는 피해가 될 수 있다. 미국 측 인사들이 기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뉴욕에서 세미나에 참석했을 때도 미국 측 인사로부터 흥미로운 한국 외교관의 '활약상'을 들었다. 싱크탱크에 일하는 이 미국인은 자신과 점심을 먹던 한국 외교관이 갑자기 휴대폰을 꺼내더니 자신이 하는 말을 타이핑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놀라운 점은 그 외교관이 휴대폰을 한 번도 쳐다보지 않고 눈으로는 줄곧 자신을 응시하면서, 자신의 말을 토씨 하나 놓치지 않으려는 듯 맹렬히 받아 적은 것을 보면서 적지 않게 놀랐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필자에게 "한국 외교관들은 다 그렇게 일해요?"라고 물었다.
한반도 전문가로 알려진 한 미국 대학교수도 종종 한국 외교관의 방문을 받는다. 그런데 대화할 때마다 그 외교관이 탁자 위에 휴대폰을 뒤집어 올려놓는 것을 경험한 후에는 불쾌한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나는 한국 외교관들이 내가 말할 때 왜 휴대폰을 뒤집어 탁자에 올려놓는지 알고 있다." 듣고 보니, 그렇게 매번 의심쩍은 행동을 하면 아무리 둔한 사람도 상대방이 대화를 녹음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챌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한 학자 역시 한국 외교관들이 종종 찾아와 현안에 대해 자문하는 인물인데, 식사를 하면서 자주 위쪽 호주머니 안으로 손을 넣었다 뺐다 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여러 국가 외교관들이 자주 찾는 인사라 경험상 '이런 일'에 눈썰미가 생긴 그 학자는 식사를 마치고 나서 한마디 했단다. "그래 오늘 녹음은 이상 없이 잘되었습니까?"
제기된 문제들은 한국 외교관 전체의 행태라기보다는 일부 사례에 해당할 것으로 보인다. 필자 역시 이를 개별적인 사례로 인식하였다. 외교 업무 수행을 위해서는 정보 수집이 필요하지만, 정보 수집과 에티켓 사이의 균형을 고려해야 한다. 지나치게 노골적이고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드는 방식의 정보 수집은 지양해야 한다. 외교에는 품격이 있다. 상대방의 신뢰와 존중을 얻는 방향으로 정보 수집 방식을 개선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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