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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정책의 새 패러다임: 지속 가능한 포용금융

입력
2024.07.11 00: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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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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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주기에서 누구든 예기치 못하게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임금 소득자가 조기 퇴직 후 자영업자가 될 수 있고, 누구든 금융사고의 피해자가 될 수 있으며, 나이가 들수록 급격한 기술 발전에 적응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따라서 모든 국민들의 금융서비스 접근성을 높여 이런 위험에 대비할 안전망을 제공하고 궁극적으로 자립과 성장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금융당국의 역할이다. 이것이 이른바 '포용금융(financial inclusion)'이다.

유엔(UN)은 개인과 기업이 합리적인 가격으로 다양한 금융서비스에 보편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포용금융'으로 정의하며, 세계은행(World Bank)은 포용금융을 통해 빈곤을 줄이고 번영을 촉진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두 기관 모두 금융서비스의 접근성과 함께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을 포용금융의 중요한 요소로 강조한다. 금융서비스에서 소외된 이들을 보듬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속 가능하지 않은 포용금융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속 가능한 포용금융을 실현하기 위해서 어떤 정책이 필요할까? 우선 대표적 포용금융 정책인 정책자금 대출부터 손을 봐야 한다. 2020년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보고서에 따르면 저리의 정책서민금융상품은 차주들의 신용 점수를 개선하는 효과는 없고 이들의 재무구조가 개선되는 효과도 단기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정책자금 대출의 설계와 평가에 문제가 있음을 시사한다.

이를 개선하려면 공급 규모나 수혜자의 수를 중심으로 정책자금 대출의 성과를 측정하는 관행에서 벗어나 수혜자들의 신용도, 재무구조, 사업 성과 등이 이 대출로 얼마나 향상됐는지를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수혜자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정책자금 대출을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금융서비스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노력도 시급하다. 은행 점포와 ATM의 수가 감소하면서 불편을 겪고 있는 노령층과 인구 소멸 지역 거주자들의 금융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우체국 전국망을 금융서비스 제공에 활용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최근 급증하고 있는 불법사금융 피해를 막기 위해 소비자에게 대부업체 정보 제공을 확대하고 불법사금융에 대한 처벌 수준을 강화하는 등의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또한 민간의 포용금융 역할을 강화할 다양한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서민과 자영업자뿐만 아니라 노령층, 이주민, 불법사금융 피해자 등 포용금융의 대상은 계속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고령인구 비중의 급격한 상승으로 복지 재정 부담이 늘어나기 때문에 정부의 재원만으로 포용금융을 실현하는 건 불가능하다. 단, 지난해 사상 최대의 영업이익을 올린 은행권에 상생 금융 방안을 요구한 금융당국의 방식은 '횡재세'와 다름없어 바람직하지도,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 이보다는 포용금융의 기준과 범위를 명확히 하고 우수한 포용금융 성과를 낸 금융기관을 포상하는 등의 방식으로 민간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 또한 중저신용자와 소상공인 대출을 주요 사업으로 추진하는 인터넷전문은행을 추가 설립하고,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하는 금융 기술인 핀테크를 통해 포용금융을 추구하는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유혜미 한양대 경제금융대학 교수·국민통합위원회 '포용금융으로 다가서기' 특별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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