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존재였을까.'
서울 삼성동 박람회장을 향하던 차 안에서 출근시간 지하철 출구로 쏟아져 나오는 직장인들의 얼굴을 마주하며 든 생각이다. 이어폰을 낀 채 정해진 곳으로 익숙한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들. 나 또한 한때 그들 속에 있었다. 불현듯 직장인 시절 내가 떠올라 생각에 잠겼다. 아득하고 갑갑한 감정이 몰아쳤지만 '그때 그 일을 했으니 지금의 내가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나 또한 여느 직장인과 다름없이 살아남기 위해 버티는 삶을 살았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호흡이 곤란해지거나 가슴이 답답해지는 증상이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찾아왔다. 그 증상이 공황장애였다는 사실은 임신 중 출근길에서 같은 증상을 겪으며 찾아간 병원에서 처음 알게 됐다. '어제 술을 많이 마셔서 그렇겠지' '몸 상태가 좋지 않은가 보다' 하며 넘겨왔던 일이 아이를 품고는 넘길 수 없는 일이 됐다. 스스로 감당하기 힘들었던 정신적 압박이 신체적 결과로 발현됐다.
당시 내 삶의 돌파구는 자신을 살피고 성취감을 맛보는 일이었다. 직장을 옮기고 나를 더 가치 있게 할 작은 재미를 쌓아갔다. 여기서 가치란 사회적 기준이 아닌 스스로가 인정하는 삶의 가치다.
기후변화와 멸종을 주제로 콘텐츠를 생산하는 언론의 브랜딩을 맡아 자리 잡기 시작할 때의 일이다. 각종 교육 기관에서 우리의 콘텐츠를 사용하고 싶다는 문의가 잇따랐다.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자'라는 의도가 배어 있었지만 한 어린이집에서 온 연락은 예상 밖의 일이었다. 아이들이 우리를 만나보고 싶다고 했다.
화상회의로 만난 아이들은 환경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실천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물었고, 지구가 아프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어 고맙다고 했다. 아이들의 걱정 어린 시선과 고민은 편리함을 위해 플라스틱과 화석연료를 남용하고 있는 현 세대의 마음을 일렁이게 했다. 내 마음 깊은 곳에서도 '이 일 하길 정말 잘했어'라는 성취가 차올랐다.
그때의 경험은 나만의 큰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홍천으로 이주한 후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에도 '나 자신을 살피고 삶의 가치와 성취감을 맛볼 수 있는가'를 가장 우선으로 생각했다. 고립되지 않고 건강하게, 오래 살아남기 위해 내가 정한 기준이었다.
대한민국에 집 밖을 나가지 않고 은둔·고립된 청년이 54만 명에 이른다는 언론 보도를 보았다. 어쩌면 고립과 버팀은 한 끗 차이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가족에게 우울한 모습을 보이면 걱정할까 봐 피하고, 나와 비슷한 삶을 치열하게 살고 있는 친구들을 붙잡고 고민을 털어놓기란 더 쉽지 않아진다. 그렇게 혼자 고립된다.
해답을 찾지 못한 채 끝없이 파고들다 보면 나라는 존재가 한없이 무기력해질 수 있다. 삶의 재미는 누군가 떠먹여주지 않는다. 성취와 행복을 찾기 위해 다분히 노력해야 한다. 극심한 스트레스 속에서도 우리는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정신적 건강을 지켜내야 한다.
최근 2030 사이에서 '자린고비 챌린지' '현금 챌린지' '무지출 챌린지'라고 불리는 고물가 시대 생존법이 떠오르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블로그, 오픈 채팅방 등을 통해 자신의 절약 습관과 투자 꿀팁을 다수와 공유한다. 스스로 만들어낸 성취를 공유하고 인증하는 것이다. 열심히 산 나를 인정하고 미래의 내가 실망하지 않을 현재를 사는 것. 우리 모두가 다음으로 나아갈 힘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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