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일방적으로 4조1,000억 원 감액한 내년도 예산안의 국회 본회의 상정이 보류됐다. 야당이 감액 예산안을 단독 처리하는 최악의 상황은 일단 피한 셈이다. 정부·여당은 민주당의 사과 및 감액 예산안 철회, 민주당은 정부의 수정안 제시란 조건을 내세워 여론전을 벌이기보다 지금이라도 절충점을 찾기 위한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내년도 예산안 법정 처리 시한인 어제 기자회견을 열어 오는 10일까지 여야가 합의한 예산안을 마련해 줄 것을 촉구했다. 예산안을 상정하지 않은 이유로 "현재로선 예산안 처리가 국민께 희망을 드리기 어렵다"고 했다. 예산안 법정 처리 시한을 지키는 것만큼 국회가 민생과 경제를 챙기고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합의된 예산안을 마련하는 게 더 무거운 책무라는 뜻이다.
통상 야당은 감액 예산안을 지렛대 삼아 자신들이 추진하려는 정책 및 지역구 예산을 확보했다. 하지만 올해 민주당의 감액 예산안에는 정부의 역점사업을 막고 자신들과 마찰을 빚고 있는 권력기관을 길들이려는 정략적 의도가 노골적으로 담겼다. 자신들이 원하는 예산을 확보하지 못하더라도 정부·여당에 더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계산에 따른 것이다. 이처럼 나라 살림을 볼모로 예산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것은 수권정당의 자세가 아니다. 민주당은 대통령비서실·국가안보실, 검찰, 경찰, 감사원의 특정업무경비·특수활동비도 전액 삭감했으나, 자신들이 집권 땐 손보지 않았다. 권력기관의 특경비·특활비에 대한 관리·감독이 필요하다면 대안 마련에 나서는 게 순서일 것이다.
예산은 '올 오어 낫싱'(전부 아니면 전무) 방식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정부·여당은 야당 탓만 할 게 아니라 여소야대 현실을 감안해 야당 요구 중 일부는 수용하거나 절충하는 유연함이 필요하다. 정부는 예산안 심의·확정권을 가진 국회를 존중하고, 여당은 정부와 야당의 가교 역할에 나서야 할 때다.
여야가 접점을 찾지 못한다면 우 의장은 감액 예산안 상정 여부를 다시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22대 국회가 정치 실패로 인한 나쁜 선례를 남기지 않으려면 의회 수장으로서 여야 중재를 위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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