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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나의 우주 별사탕'

입력
2025.01.01 04:30
수정
2025.01.0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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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당선자 나리(필명)

모든 건 우주에 떠다니는 먼지 한 톨 같은 그 시에서 시작되었다.

“그날은 참 이상했어 / 별을 쏟는 밤하늘이 나를 불렀지 / 가만히 보다가 보다가 / 우주로 우당탕 쏟아지고 말았어 // 은하수 타고 떠다니다가 / 태양처럼 빛나는 별을 봤지 / 으악! 별이 아니라 블랙홀이야! / 나는 순식간에 블랙홀리몰리 // 은하수가 범람해서 / 눈을 질끈 감았는데 / 사르르 녹아버리는 게 아니겠어? // 우주가 말했어 / 너는 별이 아니구나 / 우주에서 제일 달콤한 별사탕이야 // 우주와 사랑에 빠진 날, / 하나도 안 이상했어”

‘우주 별사탕’이라는 채유하의 시였다. 반 애들이 오올, 하며 감탄했다. 채유하는 쑥스러워하면서도 싫지는 않은 표정으로 말을 덧붙였다.

“최근에 ‘어린 왕자’ 읽고, 저도 저의 재밌고 낭만적인 우주를 그리고 싶었어요.”

환호가 커졌다. 나만 못마땅한가? 완전 엉터리 우주다. 어린 왕자는 또 뭐야?

“저는 별로입니다.”

선생님이 감상을 묻자 서슴지 않고 대답했다. 반이 진공 상태의 우주처럼 조용해졌다. 그래, 이게 진짜 우주지.

여태 모은 우주 데이터를 제공합니다.

나는 폴로의 도움을 받아 또박또박 말했다.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우주입니다. 우리는 로켓을 통해 우주로 쏘아 올려지는 거지, 아래로 쏟아질 수는 없습니다. 지구의 중력이 한순간에 사라지면 가능하겠지만 그건 재난 상황입니다. 사람이 맨몸으로 우주로 던져진다면, 우주가 137억 년 동안 쌓아온 수많은 먼지와 텁텁한 가스와 엄청난 열에 1초도 못 버티니까요. 물론 우주에 산소도 없습니다. 한강 오리배 탄 것처럼 은하수에서 유유자적 절대 불가능합니다.”

작게 킥킥 웃는 소리를 뒤로 하고 말을 이었다.

“암흑의 공간인 블랙홀을 태양 같은 별로 착각했다는 것도 황당한데 제쳐두고요, 우주를 이루는 별들은 쉼 없이 수소 등의 연료를 태우면서 삽니다. 그렇게 해서 사막보다 몇백 배는 덥거나, 남극보다 몇천 배는 춥습니다. 연료가 다 닳으면 망가지거나 폭발해서 죽습니다.”

하나둘씩 애들의 표정에 오묘한 오로라의 빛이 어렸다. 그래도 내 말은 끝나지 않았다.

“그게 아니라도 운 없으면 운석에 충돌하거나 다른 별의 폭발에 휘말리거나 미지의 세계로 집어삼켜지는 게 별입니다. 우리은하만 해도 별이 2천억 갠데 모두 이렇게 살고 이런 별들을 가진 은하가 수천억 개인 것을 알면 우주에 사랑이고 낭만이고 다 얼어 죽었죠. 우주에서 녹는 것은 우주의 무지막지한 염산과 황산을 맞은 인간이 뼈도 못 추리는 방법으로 가능합니다. 달지는 않겠네요.”

이제 웃는 사람은 없었다. 너나 할 것 없이 흔들리는 눈동자. 나는 쐐기를 박았다.

“인간은 과학과 수학을 기반으로 우주를 연구하고 우주의 비밀을 밝혀야 합니다. 우주를 왜곡하고 발전을 저해하는 이 시는, 명왕성이 134340이 되어 태양계에서 쫓겨났듯 우주에서 쫓겨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헉! 교실이 숨을 멈췄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날 보며 눈을 빛내는 몇몇 아이들. 캄캄한 밤하늘의 1등성 별처럼 또렷했다. 나는 속 시원한 표정으로 채유하의 반응을 기다렸다.

“네, 제 시를 버리겠습니다.”

기대했던 대답이다. 마음을 놓으려는 순간,

“수학, 과학밖에 모르는 저 구식 로봇에게 버리겠습니다. 인간으로 만들어 명왕성에 다녀오게 하겠습니다.”

내 우주가 뒤집혔다. 동시에 아이들 웃음 빅뱅이 터졌다. 폴로는 비명을 질렀다.

으악! 뭐야, 갑자기? 우주선 본체가 흔들려. 이상한 중력이 끌어당긴다!

황당해서 입만 뻐끔거렸다. 채유하는 그런 나를 보며 생글생글. 쟤는 평소에 너무 얌전하다 못해 소심하다고 느껴지는 남자애 아니었나? 책장에 가지런히 꽂힌 책이 나를 도발했다.

“조용, 조용! 역시 은성이는 우리 학교 ‘우주 퀸’이구나!”

선생님이 아이들을 진정시키고 내게 말했다. 나는 과학을 좋아하고 잘한다. 특히 우주 분야. 여자든 남자든 내가 제일이다. 우주 퀸이라는 별명이 괜히 붙었을까. 5학년이 되어서는 내 뇌와 몸을 작은 우주선으로 만들었다. 우주선을 조종하는 인공지능(AI) 폴로와 매일 우주 탐험을 한다.

“하지만 유하의 시는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큰 매력이 있어. 유하가 우리 반 대표로 다음 달 백일장에 나가자.”

우주 퀸에게 주어진 건 달랑 칭찬 몇 마디. 채유하는 ‘구식 로봇’에게 승리자의 눈빛을 던졌다. 임은성 너, 나한테 졌어. 네 우주가 졌다고.

정해진 경로를 한참 벗어났어. 저 행성은 뭐지? 우주선 온도는 너무 상승한 것 같은데.

그건 내 속에서 불길이 일기 때문이었다. 나는 건방지게 나를 끌어당기는 행성을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으로 보며 말했다.

‘앞의 행성에 착륙한다.’

뭐?

‘되게 재수 없는 행성이란 말이지. 아무래도 실컷 밟아주고 가야겠어.’

폴로는 어리둥절했고 나는 콧김을 휙 뿜었다. 우주선은 치이익 소리로 착륙했다.

그렇게 예정에 없던 탐험이 시작되었다. 채유하는 점심시간이나 방과 후에 자주 도서실에서 시간을 보냈다. 도서실은 그 애의 은하였다. 나는 며칠째 어색한 은하 속에서 채유하를 흘끔흘끔 노려보느라 바빴다. 지구만 바라보고 있는 달도 날 보고 울고 갈 거다.

채유하 행성: 동서남북 전방 50km 삭막한 대지뿐. 옅은 산소 농도로 호흡 부적합 판정. H2O, 감지 안 됨. 광합성 하는 엽록체, 측정 안 됨. 고기압에서 저기압으로 이동하는 공기의 흐름, 없음. 박테리아 등 미생물, 흔적조차 없음.

폴로가 여태 수집한 채유하 행성 데이터를 말해줬다. 그러고는 덧붙였다.

대장, 여기서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

계속 툴툴거리는 폴로. 나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어떤 마음으로 여기 착륙했는데, 꼬투리 하나 못 잡을 수 없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말했다.

‘작은 발견이라도 해보자. 우리 탐험 역사에 큰 도약이 될 수도 있어.’

조심해야 해, 대장. 갑자기 황산 구름이 덮쳐올 수도 있고 거대한 골짜기로 떨어질 수도 있어. 또 다른 위험 경우의 수는….

폴로의 말은 더 들리지 않았다. 멀리서 책을 정리하는 채유하를 보니 자연스레 모든 신경이 쏠렸다. 나를 잡아두는 중력 하나는 탁월한 채유하 행성이다.

채유하 행성은 우리가 사는 행성의 1.1배야. 하얀색이 섞인 부드러운 갈색빛을 내.

나보다 겨우 조금 더 큰 키, 갈색 머리. 하얀 얼굴은 뺀질뺀질 새 책 같다. 살짝 올라온 입꼬리는 나선형 은하 같지만, 그래도 흥.

또 아주 천천히 자전해. 처음 보았을 때도 엄청 조용했지.

책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가 또 들었다가 가끔은 펼치고. 행동이 우주의 암흑처럼 차분했다. 성질 급한 사람은 지켜보다 속 터지겠다. 입을 삐죽거렸다.

앗, 낯선 인공위성이 접근한다.

“저기, 세계문학 전집은 어디에 있어?”

예쁘장한 인공위성의 사근사근한 목소리. 헛, 숨이 저절로 멈췄다.

“D 코너에.”

인공위성은 발걸음을 옮기면서 아쉬운 듯 채유하를 힐끔거렸다. 떠돌이 인공위성이 아닌가? 그러거나 말거나 채유하는 다시 책을 정리하는 데 푹 빠졌다.

와, 영하 367도야. 해왕성의 위성 트리톤보다 훨씬 싸늘한데? 대장 안 추워?

화들짝 놀랐다. 내 입가에 미소가 있었다. 글 읽는 것처럼 건조한 채유하의 말인데, 내 마음은 막 태어나 우주의 따뜻한 먼지 요람에 감싸진 아기별 같은….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내가 왜 이러지?

그때 서쪽으로 넘어가고 있던 태양이 구름 속에서 나왔다. 고개를 들었다가 햇빛을 정면으로 받는 채유하. 그 애 구겨진 미간에 살포시 앉는 햇빛.

‘어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내 마음이 말랑한 빛을 뒤집어썼다. 나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쟤 얼굴, 찬란해…. 우주에서 본 지구가 황금빛으로 빛나면 저 모습일까.

곧이어 채유하는 우주의 유일한 항성이 되었다. 주변의 먼지가 채유하 항성의 빛을 받아 반짝였다. 먼지들은 점점이 이어져 우주에 빛이 흐르는 강을 만들고. 그때 내게로 고개를 돌린 항성…. 헉!

대장, 왜 그래?

재빨리 책장으로 몸을 숨겼지만 우주선 엔진이 사정없이 들썩거렸다. 두 손바닥으로 볼을 짝 쳤다. 폴로가 뭐라 하기 전에 말했다.

‘좀 더 쓸모 있는 데이터는 없어?’

글쎄…. 아무래도 우리의 장비가 부족한 것 같아. 이 행성에 걸맞은 장비를 갖춰야 제대로 탐험할 수 있지 않을까?

‘좋아, 지금 우리에게 제일 필요한 장비가 뭐지?’

현 상황 분석을 시작하겠습니다. 목표는 최상의 결괏값 산출.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손에 ‘어린 왕자’책이 쥐어졌다. 한숨이 나왔다. 글자 많은 책은 딱 질색인데. 그래도 탐험을 위해서…!

5, 4, 3, 2, 1, 엔진 점화, 독서 이륙!

폴로가 로켓을 쏘아 올렸다. 로켓은 어린 왕자 세계를 향해 힘차게 나아갔다. 글자가 별처럼 점점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떤 것 같아, 대장?

꽤 긴 시간이 지난 후에야 로켓이 돌아왔다. 몸은 삐걱삐걱, 마음은 기름칠을 잔뜩 한 채로.

‘‘어린 왕자’는 우주와 지구를 여행한 어린 왕자와 그를 만난 비행기 조종사의 이야기인데…… 뭔가, 뭔가 포근한 책이야.’

그게 무슨 말이야?

‘나도 설명 잘 못하겠어. 비과학적인 게 셀 수도 없이 많은데, 잘 안 느껴져. 어린 왕자의 순수한 모습 때문인가? 아니면 비행기 조종사의 마음이 따뜻해서? 둘의 대화가 다정해서? 답이 잘 안 내려지는데 기분이 그렇게 나쁘진 않아.’

흠, 대장은 확실한 답을 좋아하는데 말야.

‘맞아, 그런데 답이 없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어. 그냥 내 마음이 평화로우니까 좋아. 다른 책들도 이렇다면, 그래서 채유하가 책을 좋아하는 걸까?’

채유하에 대한 짜증은 잊어버리고 어렴풋이 짐작해 보았다. 그러다 책 표지를 다시 보았다. 자기 별에 우뚝 솟아있는 어린 왕자. 키가 한 1,000미터는 되려나.

‘그래도 과학이 더 재밌어. 이 책도 과학이 더 강했다면 좋았을 거야. 내가 뽑은 명대사도 어린 왕자가 떠나온 별은 B612호 소행성입니다, 야.’

음. 오케이, ‘어린 왕자’ 세부 데이터로 저장 완료.

그때 내 앞에 채유하가 나타났다. 내 손에 들린 ‘어린 왕자’를 슥 보았다.

“…이상하네.”

낯선 인공위성에게 말했을 때처럼 건조한 목소리. 그러고는 무표정으로 스쳐 갔다.

대장, 또 우주선 온도가 상승했는데? 그런데 전과는 조금 달라.

허겁지겁 화장실로 달려가 거울을 봤다. 얼굴이 불그죽죽 화성이었다. 정확히는 470도 금성에 갇혔다 나온 듯한 화성. 얼굴보다 더 마음에 안 드는 건 기분이었다. 가야 하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고 해야 하는데 뭘 해야 할지 몰랐다.

‘으으, 우주 쓰레기가 된 것 같아.’

우주 쓰레기 기분은 맛있은 음식을 먹어도 잠을 푹 자도 과학 공부를 열심히 해도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내 우주가 속절없이 오염되었다. 채유하 행성을 중심으로 자기 마음대로 팽창했다 수축했다를 반복했다. 우주의 모든 별들이 채유하 행성의 위성이 되었다. 폴로는 정신을 더 산란하게 만들었다.

대장, 채유하 행성에서 며칠을 낭비했는지 알아? 우리의 탐험 계획이 얼마나 틀어졌나면….

‘으아악! 그만 좀 쫑알대. 안 그래도 정신없어 죽겠는데.’

정신없다고? 지금 블랙홀리몰리 상태야?

‘뭐? 야! 너 누가 그런 말 쓰래?’

어? 내 데이터에 저장되어 있었는데? 대장이 저장한 거 아니었어?

‘내가 언제!’

이제는 폴로도 이상하다. 우주 탐험 길이 구만리인데. 이제 더 이상 문제 발생은 안 된다.

“너 요즘 도서관 자주 오더라?”

마음 다잡기 무섭게 운석을 맞았다. 채유하였다. 나처럼 도서실을 나서고 있었다. 간신히 뻔뻔하게 말했다.

“너는 오늘 집에 빨리 간다?”

“내일이 백일장이니까.”

“뭐? 그게 내일이야?”

진심으로 놀랐다. 언제 시간이 이렇게 흘렀지? 자전에 집중하느라 공전에 신경을 쓰지 못했더니 뜻밖의 위치에 서 있었다.

“너 ‘어린 왕자’ 읽던데, 어때? 되게 멋진 이야기지 않냐?”

채유하가 평소답지 않게 말이 많다. 맞다, 그게 있었지.

ㅇㅓ린 王ㅈr가 ㄸㅓ나on ★은 B⑥1②호 小행성입ㄴㅣㄷr.

‘뭐야? 폴로, 갑자기 왜 그래?’

ㅇㅓ린 王ㅈr가 ㄸㅓ나on ★은 B⑥1②호 小행성입ㄴㅣㄷr.

‘바이러스라도 먹은 거야? 안 돼!’

ㅇㅓ린 王ㅈr가 ㄸㅓ나on ★은….

갑자기 폴로가 고장났다. 나는 오류 메시지에 둘러싸였다. 당황의 한가운데인데 채유하는 나만 빤히 보고. 결국 던지듯 외쳤다.

“역시 숫자가 최고더라!”

“뭐?”

“그, 그, 어린 왕자는 B612호 행성에서 왔다나 어쩌구라는 대사 말이야. 숫자를 말하니 잘난 척하던 어른들이 찍소리도 못하잖아? 통쾌했어. 숫자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느꼈지. 역시 숫자가 짱이야. 수학 최고! 수학 빼고는 다 필요 없어! 세상에 수학만 남았음 좋겠어!”

말을 마구 쏟아낸 나는 입을 쩍 벌린 채유하를 제대로 보고서야 정신이 돌아왔다. 채유하는 똥처럼 생긴 외계인이 지구는 미개한 원시 별이라고 욕하는 것을 본 듯한 표정이었다.

“…너 진짜 이상해.”

그 애의 꿈틀거리는 눈썹에 마음이 사정없이 곤두박질쳤다.

악! 여기 바다잖아?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거야?

채유하 행성에 발이 닿지 않는 아주 깊은 바다였다. 나는 보이지 않는 파도에 휩쓸려 이리저리 흔들렸다. 숨이 가빠왔다.

“너 정말 이상하다고 임은성.”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 애가 나를 쏘아보며 뭐라 소리치려고 했다. 돌진하는 집채만 한 파도. 눈을 질끈 감았다. 이대로 소멸하는 별이 되겠구나.

“…아니다, 안 이상해.”

하지만 차가운 파도가 아닌 따뜻한 공기가 나를 덮었다. 초신성처럼 번쩍, 눈을 떴다. 불그스름한 성운이 뺨에 내려앉은 채유하 얼굴이 보였다.

“무슨 소리야? 왜 이랬다저랬다 해?”

“어? 내가 뭐라고 했어?”

채유하가 순진하게 물었다. 하지만 넘어갈 내가 아니었다.

“나보고 이상하다고 했다가, 안 이상하다고 했잖아.”

“아….”

우물쭈물하는 채유하. 그러다 내 눈빛을 읽었다. 절대 물러설 생각 없는 내 눈빛을. 결국 어쩔 수 없다는 듯 털어놓았다.

“너 정말, 너무 이상한데, 계속 이상해서 이제는 안 이상해. 미안, 나도 뭐가 뭔지 잘….”

뒤통수를 벅벅 긁으며 말을 끝맺었다.

어? 채유하 행성이 자기 궤도를 잊어버렸나 봐. 이럴 수도 있나?

황당해서 중얼거리는 폴로. 하지만 내 볼에는 신비로운 바람이 머물다 갔다.

“그래서 싫어?”

시간이 멈춘 듯한 깨끗한 공기 속, 조심스레 유하의 손을 내 마음으로 이끌었다.

“내 이야기가 싫냐고.”

아무 말 없는 유하. 나는 다시 금성에 갇힌 것처럼 온몸에 열이 올랐다. 그래도 바보별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이윽고 유하는 결심한 듯 두 눈에 나를 담았다.

“아니.”

그 애의 나선형 은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너 재밌어서, 더 읽고 싶어.”

유하가 내 마음속 책장에서 우주를 꺼냈다. 우주가 팔랑, 펼쳐졌다. 심장이 쿵, 떨어졌다. 목성으로 순간이동이라도 한 듯. 곧이어 사르르 녹는 마음. 채유하 행성에 드러난 폭신한 땅.

우와, 우주에 이렇게 단 공기가 있었어?

폴로도 놀라서 말했다. 나는 단 공기에 힘을 얻었다.

“백일장 끝나면, 같이 우주여행 어때?”

“어…. 왜소행성 134340부터 시작할까?

자연스럽게 내 말을 받는 유하. 내가 놀랍다는 눈을 하자 다시 짙어지는 뺨 성운의 붉은 빛. 동시에 우리는 교문을 나섰다. 신호등의 초록 변광성이 깜박이고 있었다. 때를 놓치면 안 된다.

“그래, 명왕성에서 보자!”

냅다 말하고 횡단보도를 뛰어 건넜다. 왠지 모르게 부끄러웠다. 그런데 뒤에서 들리는 외침.

“임은성, 오늘은 안 이상한 날이야!”

돌아보니 유하가 등을 보이며 뛰어가고 있었다. 멀리서도 붉은 성운이 번진 그 애의 귀가 보였다.

온몸 구석구석 기운이 솟았다. 참지 못하고 또 달렸다. 물방울이 톡 튀고 시원한 바람이 불고 초록 이파리가 싱그러운 채유하 행성을 달렸다. 폴로는 호들갑을 떨었다.

대장, 채유하 행성에도 생명체가 있었어! 이건 큰 발견이야!

고개를 숙여 손에 놓인 생명체를 보았다. 작디작고 아직 무엇인지 잘 알 수 없는 생명체는, 내 마음에 사뿐히 앉았다.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폴로! 지금 우주선 상태는?’

폴로도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살짝 기울어졌어. 지구처럼.

나리(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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