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 당선자 길란
2024년 12월의 어느 날 밤, 나는 뉴스를 틀어 놓고는 간장을 끓이고 있었다. 뉴스를 보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고, 양파도 상하기 일보 직전이라 빨리 장아찌로 만들어야 했으므로. 뉴스에서는 맨몸으로 무장한 군인들을 막아선 사람들의 외침이 들렸다. 저들은 그날 밤 죽을 뻔했다. 나도 죽었을지 모른다. 나는 죽을 수도 있다. 고추를 넣은 매캐한 간장 냄새에 코가 찡해질 때쯤에야 나는 가스레인지의 후드도 켜놓지 않고 간장을 끓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미 온 집 안에 간장 냄새가 스며들어 있었다. 문득 산다는 게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상해 가는 양파를 어떻게든 먹어 보겠다고 간장을 끓여야 한다니.
타인의 외침을 듣지 않는 사람들, 살기 위해 내지르는 악다구니를 간단히 불편과 소음으로 치워 버리는 사람들. 그들은 어떻게 그렇게 평온하고 고상할 수 있는 것일까. 또한 겨우 양파나 자르고 간장이나 끓이고 있는 나는 얼마나 치졸한가. 소설을 쓴다는 건 얼마나 사소한 일인가. 삶은 왜 이렇게 구차하고 구질구질한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하면 전부 싫어져서 그냥 도망쳐 버리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요즘은 나를 치졸하게 만드는 사소하고 구질구질한 것들이 나를 살아가게 만들기도 한다는 생각도 자주 한다. 여름에 먹는 멜론과 복숭아, 소파 위에서 쿨쿨 잠을 자는 고양이의 숨소리 같은 것들. 하다못해 잘 만들어진 양파장아찌까지도 '이걸 먹기 위해 내일도 살아야지' 하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렇게 생각하면 양파를 자르고 간장을 끓이는 일이 구질구질할지언정 의미 없는 일은 아닌 거 같다. 내일을 기대하게 하니까 말이다. 내일을 기대하니까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더 큰 소리로 악다구니를 지를 수도 있고, 견고한 여리고성을 무너트릴 수도 있다. 무언가를 사랑하는 일도 할 수 있다.
소설이란 무엇일까? 소설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삶이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대답할 수 없는 만큼 이 물음들에 대해서도 대답하지 못하겠다. 다만 내가 쓰는 소설도 양파장아찌나 여름의 멜론이나 고양이의 숨소리와 같은 것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 정도만이라도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삶을 그래도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하게 해주는 모든 사람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그리고 나의 고양이 가람이에게도 이 자리를 빌려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
△1992년 경기 광명시 출생
△명지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박사 과정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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