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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뱀 통쾌하게 배반하는 새로운 뱀의 시작을 알린 작품" [동시 심사평]

입력
2025.01.0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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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시 부문 심사평

김개미(오른쪽) 시인과 김유진 시인 겸 아동문학평론가가 지난달 13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2025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시 작품을 심사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김개미(오른쪽) 시인과 김유진 시인 겸 아동문학평론가가 지난달 13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2025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시 작품을 심사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올해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시 부문에는 지난해보다 많은 281명이 1,500여 편을 응모해 주셨다. 동시 창작에 대한 열기가 창작자 전체의 수준을 올리고 읽는 관심으로도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래 사랑받아 왔던 동식물을 포함한 자연물, 사물 등의 소재는 찾아보기 어려운 반면, 일상에서 경험한 해프닝이나 에피소드 등을 소재로 한 작품은 많았다. 전반적으로 길이가 길어졌음은 물론 산문화 경향을 보여서일까. 긴장감을 확보하며 함축의 미를 보여주는 작품은 드물었다. 본심에서 논의된 작품은 ‘몰래 쓰기’ ‘찰흙’ ‘뱀 꿈’이었다.

‘몰래 쓰기’는 교과서와 일기장을 소재로 하였다. 아이는 비밀스러운 것을 일기장이 아니라 교과서에 적는다. 사춘기에 접어들었을까. 아이는 좀 더 복잡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중요한 것을 숨기지 않는 방식으로 숨기는 이 방식은 ‘숨은그림찾기’를 떠올리게 한다. 발설하고 싶으면서도 비밀로 간직하고 싶은 양가감정을 섬세하게 포착했다.

‘찰흙’의 빼어난 점은 매력적인 소재의 선택이었다. 찰흙은 무엇이 되기 전의 덩어리로, 끝없이 끈적이며 계속해서 우리의 손을 더럽힌다. 서두르거나 방치하면 갈라지고 부서진다. 녹록지 않은 현실과 그로 인한 축축한 심리를 담아내기에 좋은 소재다. 이 작품은 그늘에서 천천히 말려야 하는 찰흙처럼 읽는 사람을 오래 붙잡아두는 힘이 있었다.

‘뱀 꿈’은 새로운 뱀의 등장을 알린 작품이었다. ‘뱀 꿈’ 속의 뱀은 무섭고 징그러워서 피하고 싶은 뱀이 아니라, 고통의 터널을 지나 생명과 갈망으로 출렁이는 눈이 멀 것 같은 뱀이다. 빛 속에 찬란하게 펼쳐진 뱀은 그동안 보아왔던 죽음과 어둠을 표상하던 낡은 뱀의 이미지를 통쾌하게 배반한다. 우리가 이미 소비해버린 많은 소재 속에 우리가 놓친 매혹의 이미지가 아직도 무수히 잠들어 있으리라. 함께 투고한 ‘사과는 그만’ ‘토끼 인형’에서도 역량이 엿보였다. ‘뱀 꿈’을 수상작으로 선정하며 진심으로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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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위원 김개미(대표 집필) 김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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