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심사평
예년보다 응모 편수가 늘었다는 이야기와 함께 건네받은 작품들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매우 높았다. 언어와 사유, 두 축이 팽팽한, 그만큼 뛰어난 기량을 갖춘 시들이 많았다. 이 시들이 어디를 어떻게 지시하고 있는지 주의 깊게 살펴야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이즈음 세상은 너무도 소요하고 도처에서 참혹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으므로. 시를 쓰는 이라면 누구보다 예민하게 지금-여기를 감지하리라 믿기 때문에.
투고작들에서 발견한 대략의 경향이라면 이런 것이다. 먼저, 시가 점점 더 길어지고 있는 것. 기성의 추세를 수용한 결과인지는 모르겠으나 시적 밀도를 높이고 개성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이 꼭 길게 쓰는 것만은 아닐 텐데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내용 면에서는 식물과 동물(주로는 반려동물)을 주요 소재로, 시 쓰기의 행위 자체를 하나의 장치로 채용한 경우가 다수 눈에 띄었다. 스스로를 잉여적 존재로 규정하는 화자, 더불어 자살 혹은 죽음의 징후를 내세우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기후, 생태, 노동, 그리고 현 정세에 대한 우려 등을 기반으로 공공적 상상력을 펼쳐내는 경우도 있었는데, 유의미한 주제들이 표층적 차원에 그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게도 되었다.
이런 가운데 ‘가담’ 외 4편은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세계와 사람에 대한 관심을 아주 섬세하게, 진정(眞情) 어린 어조로 그려냄으로써 마음을 끌었다. ‘가담’은 “두려운 일이 매일 새롭게 일어나는” 속에서도 “계속해서 넘어지기”를 택할지언정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이 조용히” 잊히도록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선한 의지가 돋보였다. 선량함 자체가 아니라 그 같은 성질을 담담하게 추동해내는 감각이 귀하게 여겨졌다. 자신을 넘어 타자를 향해, 가까운 곳에서 멀리까지 관계의 가능성을 확장해가는 태도와 그것을 지지하는 조밀한 언어에는 특별한 울림이 있었다. 응모한 작품 모두 일정한 완결성을 지니고 있는 점 역시 미더웠다.
마지막까지 함께 논한 작품은 ‘매미 없이 여름 나기’ 외 4편, ‘생활의 트라이앵글’ 외 4편, ‘혹한기’ 외 4편 등이다. ‘매미 없이 여름 나기’ 외 4편은 쓸쓸함의 정서를 그리는 데 있어 각양의 이미지를 능란하게 잇대어 전개한 점이 좋았고, ‘생활의 트라이앵글’ 외 4편은 일상의 사소한 면면을 차분히 들여다보면서 심장한 사유를 길어낸 점이 인상적이었다. ‘혹한기’ 외 4편은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여러 거대한 문제를 생활 안으로 들여와 생생하게 풀어낸 점이 탁월했다. 이들 작품을 최종으로 선택하지 못한 데 대해서는 무언가 부족해서라기보다 우선적으로 고려한 가치가 있었다 정도로 말해 두고 싶다. 어느 정도 심사자들의 취향이 작용한 결과일 수도 있겠다. 곧 다른 지면을 통해 기꺼이 만나게 되리라 예상한다.
정성스러운 작품을 보내준 모든 응모자들께 감사를 전하며, 자신만의 보법으로 계속 정진해 가시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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