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 심사평
올해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응모된 작품들은 소설의 소재로 자주 출현한 돌봄, 간병, 코인, 부동산 등을 통해 인생사의 문제를 가리키면서도 그 안에서 읽히는 세부 풍경과 가치관에 있어서는 한층 도발적인 변화를 보여줬다. 한국문학의 위상과 한국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높아짐에 따라 상상의 폭이 과감해진 결과가 아닌가 짐작해 본다.
본심에서 검토한 작품은 ‘복 있는 자들’, ‘고원’, ‘아오리스트의 마지막 습작’, ‘화석’, ‘공원 모임’ 등 5편이다. ‘공원 모임’은 알코올중독 모임에서 만난 두 남녀를 시작으로 그들 각자의 인생을 드리우고 있는 미확인, 미결정 사건들을 복기하는 자아 찾기 소설이다. 진짜 나를 만나고 싶은 사람들의 속절없는 방황이 핍진한 슬픔을 환기하는 한편, 사연이 드러나는 과정보다 사연 그 자체에만 집중하는 평면적 구조가 아쉬웠다. ‘아오리스트의 마지막 습작’은 독일 유학 중이던 화자가 할머니의 ‘아오리스트 필사 노트’를 읽기 위해 초급 그리스어를 배우는 과정을 그린다. 언어의 현실을 통해 현실의 언어를 이해하고자 하는 발상이 흥미로웠지만 다양한 시공간에서 수집된 다채로운 사연들이 단편소설이라는 제약적 형식과 조화를 이루기에는 과잉돼 보였다.
현생 인류 DNA에서 네안데르탈인 유전자가 발견됐다는 이론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이는 ‘화석’은 중석기 시대의 화석을 질투하는 한 남자의 사랑에 대한 열등감에서 비롯된 긴장감과 몰입감이 장점이었지만 인물의 개인적 욕망과 사연이 사회의 보편적 욕망과 사건으로 확장되기에는 설득력이 부족해 보였다. ‘고원’은 부모의 뜻에 따라 대안학교에 입학했지만 진로에 갈피를 못 잡는 학생과 퇴사 후 시골 대안학교 교사로서 생태적 삶을 실천하는 선생의 다소 정체된 생활을 보여준다. 운동권 세대의 성취라 할 수 있는 ‘대안’적 삶이 그다음 세대에게도 곧장 ‘대안’이 되지 못하는 세대 간 어긋남을 포착한 것이 돋보이면서도 두 사람의 관계, 내면의 변화 등 소설화 단계에 필요한 서사적 요소보다 직접적 진술로 진행된다는 점이 아쉬웠다.
‘복 있는 자들’은 임대주택에서 최대한 오래 살기 위해 지속가능한 가난을 추구하는 주인공의 ‘완벽한 인생 설계’를 통해 가난의 역설을 가시화하는 작품이다. 중위소득의 43%인 97만 원을 넘지 않는 범위 내의 아르바이트만 하고 현 임대주택 계약이 끝나면 모친의 임대주택을 신청해 아파트 ‘갈아타기’를 도모하려는 이 인물을 한심하게 바라보는 건 차라리 쉽다. 그러나 “충분한 가난은 행운이 되기도 한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자조적 소설이 일한 만큼 돈을 모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을 순진한 사람이라고 부를 때 그 말을 반박하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확실한 성공 신화에 매달리기보다 확실한 구제 정책을 이용해 최소한의 품위를 챙기는 ‘영악한’ 삶의 방식이 그가 느끼는 박탈감과 소외감까지 가려 주진 못한다. 지극히 사실적인 동시에 지극히 반어적이고, 다소 뻔뻔해 보이지만 그저 모범적일 뿐이기도 한 이 소설은 가난이라는 고전적 주제를 동시대 한국의 정서로 정확하게 번역해 보인다. 매력적인 소설은 사람 마음을 움직인다. 딜레마로 가득한 주인공을 바라보는 마음이 고단할 만큼 바빴다. 당선자에게 축하와 응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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