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러우전쟁
우크라, 희토류 등 전략광물 풍부
트럼프, '약탈적' 광물협정 청구서
푸틴, 핵심광물 산지 상당수 점령
러 연방 편입 등 통제권 강화 추진
트럼프, 종전협상서 우크라 배제
푸틴과 광물 배분 담판 위한 포석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설전 끝에 결렬되자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촌평했다. 또 “그 어떤 미국 대통령도 카메라 앞에서 외국 지도자에게 이 정도로 혹독하게 폭발한 적은 없었다”고 했다. 로이터통신은 당일 회담을 ‘재앙’으로 표현했다.
트럼프와 젤렌스키의 만남은 러시아ᆞ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기 위한 두 정상의 구상이 극단에 서 있음을 보여줬다. 젤렌스키는 트럼프가 요구한 5,000억 달러(약 723조 원) 규모의 ‘약탈적’ 광물협정을 수용하는 대신 구체적인 안전보장 방안을 요구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광물협정을 지난 3년간의 지원에 대한 ‘청구서’로 여겼고, 젤렌스키를 종전 협상에서 배제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종전 협상을 ‘미국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광물자원을 나눠 갖는 과정’으로 상정하고 있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회담하고 있다. 이날 정상회담은 설전 끝에 파행됐다. 워싱턴=AP 뉴시스
“우크라 광물 분배가 협상 성패 좌우”
우크라이나는 지정학적 요충지이자 희토류ᆞ철광석ᆞ석탄ᆞ망간ᆞ우라늄 등 전략적 자원이 풍부한 자원부국이다. 특히 첨단산업 분야와 전자제품ᆞ군사장비 등에 필수적인 희토류는 매장량이 중국에 이어 세계 2위 규모로 추정된다. 중국 의존도를 낮추려는 서방국가들의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또 우라늄 매장량은 유럽 최대 규모로 원자력발전과 군사용 수요를 모두 충족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이를 감안한 듯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은 “우크라이나의 광물자원 분배가 러우전쟁 종전 협상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종전 후 사실상의 승전국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광물자원 일부를 취하는 수준이 아니라 미국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광물자원을 나눠 갖는 협상이 곧 종전 협상이라고 본 것이다.
트럼프는 전쟁 장기화로 인한 미국의 경제적 부담과 국제사회의 불안 해소를 종전 추진의 이유로 든다. 하지만 젤렌스키에게 내민 청구서에서 보듯 무게중심은 우크라이나의 전략적 광물자원에 가 있다. 이를 통해 중국에 대한 희토류 의존도를 줄이고, 미국의 제조업 및 방위산업 경쟁력을 높이려는 것이다. 푸틴과의 직접 대화를 선호하는 건 종전과 함께 광물자원 확보를 최대한 서둘러 매듭짓기 위함이다. 광물자원이 풍부한 우크라이나 동부 및 남부지역을 장악한 러시아와의 협력은 필수다.

푸틴은 상대적으로 느긋하다. 이미 우크라이나 핵심 광물자원의 주요 산지를 상당 부분 점령했기 때문이다. 우선 우크라이나 동부의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남부의 헤르손과 자포리자 등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하며 이를 협상의 기본 조건으로 제시할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 관영 타스통신은 이들 지역과 관련해 “러시아 연방에 편입시키거나 친러 정권이 통제하는 자치 지역으로 만드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전했다.
현재로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오데사를 비롯한 일부 지역을 추가로 점령한 뒤 본격적으로 협상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푸틴이 점령지 통제권과 광물자원을 동시에 활용해 협상력을 높이려 할 것이란 얘기다. 이에 따라 트럼프의 공언과 달리 실질적인 종전 협상은 하반기에나 본격화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ᆞ푸틴 밀착에 우크라 주권 흔들
‘트럼프의 미국’이 전쟁 당사자인 우크라이나를 배제한 채 러시아와 종전을 논의하는 건 억지에 가깝지만 국제사회의 냉혹한 현실이기도 하다. 유럽 주요국이 겉으로는 일제히 반발하지만, 속내는 자국의 경제적 이익에 있다. 젤렌스키에 앞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가 연이어 트럼프를 만난 걸 두고 겉으로는 우크라이나의 발언권을 높이기 위한 것으로 치장했지만, 실상은 저명한 금융가문인 로스차일드재단을 배경 삼아 두 나라가 다량 보유한 우크라이나 국채 가격의 하락을 막으려 읍소하기 위해서였다는 얘기가 나온다.

마코 루비오(오른쪽)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달 18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러우전쟁 종전을 위한 첫 고위급 회담 중 악수하고 있다. 리야드=AFP 연합뉴스
미국과 러시아는 본격적인 종전 협상에 앞서 지난달 18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의 중재로 양국 관계의 포괄적인 정상화 방안을 논의했다. 러시아에 대한 트럼프의 접근법이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와는 전혀 다를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실제로 미국은 지난달 24일(현지시간) 유엔총회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규탄 결의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또 러시아가 부담스러워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ᆞ나토) 탈퇴 가능성을 포함해 ‘대서양 동맹’의 무게감을 대폭 낮췄다.
트럼프는 특히 푸틴과의 종전 협상에서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불가와 크림반도 영구 포기를 명문화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또 돈바스 등 러시아 점령지의 통제권을 인정할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와 광물자원을 나눠 갖기 위한 이 같은 당근은 사실상 당사자인 우크라이나의 주권을 외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크라이나가 자칫 주권국가로서의 입지마저 흔들릴 처지에 몰린 건 강대국의 일방통행과 지도자의 전략 부재 등이 중첩된 결과라는 게 중론이다. 사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나토의 동진과 무관치 않은 측면이 있다. 더욱이 나토가 2019년부터 비회원국인 우크라이나를 집단방위 시스템에 사실상 포함시켜 러시아 압박의 최전선으로 만든 가운데 젤렌스키의 적극적인 나토 가입 추진은 상황을 악화시킨 요인 중 하

물론 대통령이 바뀐 뒤 태도가 돌변한 미국이나 여전히 우크라이나에 전쟁을 계속하라고 종용하는 유럽 주요국들의 행태는 ‘강대국 횡포’의 전형이다. 특히 트럼프가 제시한 광물협정은 지난 3년간 지원ᆞ약속한 금액의 5배 가까운 규모인 데다 미국 기업에 광산 개발권을 부여하는 등 ‘약소국 팔 비틀기’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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